잠실벌에서 '부정선거 재선거'를 부르짖는 사람들. Ⓒ한미일보
역사에는 참 묘한 말들이 있다. 일본에는 지금도 “고쿠라의 행운(小倉の幸運)”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안도감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안에는 전쟁의 비극과 인간 운명의 아이러니가 함께 담겨 있다.
1945년 8월9일 아침, 미군 B-29 폭격기 복스카(Bockscar)는 두 번째 원자폭탄을 싣고 일본 상공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가사키가 원래 목표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도시의 명운을 가른 구름 한 줄기
이날 원폭의 제1 목표는 규슈 북부의 고쿠라였다. 현재의 기타큐슈시 일대에 해당하는 도시로, 당시 일본 육군의 주요 병기창과 군수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폭격기는 예정대로 고쿠라 상공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구름과 연기 때문에 목표 식별이 어려웠다. 원폭 투하 임무는 육안으로 목표를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폭격기는 여러 차례 선회하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료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지휘관은 결정을 내렸다. 제1 목표를 포기하고 제2 목표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 제2 목표가 바로 나가사키였다.
몇 시간 뒤 나가사키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수만 명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고쿠라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고쿠라의 행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같은 날, 같은 임무, 같은 폭탄이었지만 구름 한 조각과 연기 몇 줄기 때문에 한 도시는 살아남고 다른 도시는 파괴되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표현은 듣는 사람에 따라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정말 그것은 행운이었을까?
고쿠라 사람들에게는 분명 행운이었다. 가족이 살아남았고 도시가 남았다. 그러나 그 행운은 다른 도시의 불행 위에서 성립된 행운이었다. 나가사키가 대신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존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과 맞바뀌었다.
역사는 종종 거대한 이념과 국가의 결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때때로 바람의 방향, 구름의 높이, 연기의 흐름 같은 사소한 요소에 의해 바뀐다. 수십만 명의 운명이 장군의 전략보다 날씨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고쿠라의 행운은 그래서 전쟁사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세계 속에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는 흔히 역사가 거대한 계획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는 우연한 기상 조건 하나가 도시의 생사와 수십만 명의 운명을 갈라놓은 순간도 존재한다.
1945년 8월9일 아침, 고쿠라 상공을 덮고 있던 구름은 단지 기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도시를 살리고 다른 도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 속 가장 무거운 구름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것을 “고쿠라의 행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행운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쟁의 비극이 함께 남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편한 질문을 던질 용기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많은 시민은 특정 정치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두고 환호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역사가 평가하는 것은 선거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갔는가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민주주의가 살아 있고, 시민이 깨어 있으며, 권력을 감시할 수 있다면 나라에는 다시 기회가 있다. 반대로 내가 지지하는 세력이 승리했다는 이유로 모든 의심과 비판을 금지한다면, 그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승리의 취기가 아니다. 불편한 질문을 던질 용기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면 왜 부족했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가능할 때 민주주의는 살아 있다.
역사는 종종 한 장의 투표지, 한 명의 공무원, 한 번의 결정에서 갈린다.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던 일이 훗날 나라의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고쿠라를 살린 것은 거대한 군대가 아니라 구름이었다. 대한민국을 살리는 것은 특정 정치인이 아닐 수도 있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하는 시민, 결과보다 절차를 먼저 보는 시민, 진영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시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행운이다. 역사는 말한다. 행운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