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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의 전라도에서] 국화와 칼
  • 정재학
  • 등록 2025-11-02 16: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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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칼럼니스트억새가 쓰러지는 마을, 날이 선 칼바람 사이를 지나 고향집으로 왔다. 대문 앞에서 잠깐 휘청이듯 멈추어 섰다. 노오란 너무도 노오란 것들이 대문 곁에 앉아 있었다. 국화 무더기였다. 그 선명한 노란빛에, 온 세상을 쏘아보던 내 눈빛이 가라앉는다. 참으로 그것은 노란 선의(善意)였다.


국화는 착함, 노란색의 착함이었다. 지난 봄날 개나리밭에서 세상에 대한 적의(敵意)를 잠시 풀었던 것도, 유치원 아이들의 노오란 옷차림 앞에서 웃음을 지었던 것도 노란빛이 주는 선의(善意) 때문이었다.


적을 만나는 삶에서 긴장의 끈을 풀어본 적이 없다. 나는 그토록 피곤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교단을 지키는 교사로서 분필 대신 무딘 필봉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의 적 앞에 나를 내놓은 삶. 그 삶이 오늘 국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잠시 고개를 숙인다. 무기를 놓고 국화를 바라본다. 쪼그리고 앉아 향기 속에 코를 박는다. 짜릇한 향기여. 이어 가슴이 내려앉는다. 무기를 담던 칼집을 풀었다. 이 고운 빛, 적의(敵意) 없는 노랑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꽃잎을 문지르고 있었다.


자유민주는 우리의 안녕(安寧)이다. 공산을 위하여 우리의 둥지를 부수는 패륜의 적들과 온몸을 던지는 전투를 벌여왔다. 그 적은 나의 적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적이었다. 적은 나의 시(詩)에도 있었다. 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인간을 향한 착한 서정이었다. 거짓 없는 삶. 나는 민주를 말하는 저질들로부터, 거짓과 위선으로부터 나의 꿈을 지키기 위하여 한 팔의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오늘 시골집 대문 앞에서 잠시 칼을 잊고 있는 것이다. 적은 매서운 바람과 함께 침공의 칼날을 감추지 않고 있을 것이나, 지금은 잠시 국화를 위하여 승부를 잊어야 한다. 그 겨울 흔적을 지우고 다시 봄을 맞을 때, 다시 인연을 맺고자 살아나는 국화 푸른 잎에서 우리는 여름 천둥소리를 들었다. 봄나비와 여름 매미소리를 보내고, 이제 한 해를 다하는 오랜 국화의 기도를 위하여, 나는 두 손을 모아야 한다.


적은 국화의 선의(善意)를 말한 적이 없다. 국화의 평화, 국화의 눈물, 국화의 기도에 대하여, 적은 민중의 지배와 공동의 소유와 힘의 탄압을 말한 적은 있었다. 지금 그들은 꽃밭을 짓밟는 무력에 취해 있다. 세 개의 특검. 국화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국화는 내게 뭇 생명들의 사멸(死滅)을 보여주며 휴식을 권하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내 영적 자유를 위해서 칼을 잊어본 적이 없다. 내 자존(自存)의 모든 것은 지배당하지 않음에 있었기에, 늦은 가을날의 서릿발 독재를 허용한 적이 없다.


지난 여름이 독기를 풀고 떠나갈 때도 나는 해방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듯 불면(不眠)의 밤을 맞이하면서도 새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품고 있는 칼의 노래를 들었기 때문이다.


국화 앞에서 잠시 칼집을 풀고, 달과 별을 사랑하던 허허로운 삶들이 지나가는 하늘을 올려본다. 북녘 바람은 항상 그러하듯이 차갑다. 국화의 위안을 받들고 난 마음에 다시 시퍼런 날이 선다.


언젠가는 무기를, 그리고 칼집을 다음으로 넘기겠지만, 이후(以後)엔 다만 아름다운 시편(詩篇)이 나의 위안으로 남으리라. 누군가는 나를 원망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나처럼 국화 앞에서 적의(敵意)를 풀고 있을 것이나, 내가 꿈꾸는 세상에 두 번 다시 된서리 내리는 날의 강요는 없을 것이다.


칼을 든다. 민주라는 이름의 독재 앞에 선다.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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