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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전쟁을 유발하는 인기 정치와 안보 파괴를 경계한다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11-12 15: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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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장이 풀린 핵 억제력,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기자회견. 연합뉴스. 

객원논설위원·육사 40기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서는 한미동맹의 공식적 약속이자 조문(條文)의 기반이었다. 그동안 공동성명서에서 가장 강력한 핵사용 억지의 쐐기였던 '북한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또한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라는 오랜 약속도 자취를 감췄다. 누구의 의지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글씨  두 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던 강력한 핵우산과 핵억지력의 핵심 제어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핵사용 억지의 쐐기 문장의 삭제로 핵 억지력이 흔들리고 있다. 


핵 단추는 군(軍)이 아니라 정치가의 손에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향해 인류 최초의 핵을 떨어뜨린 것도 군 지휘관이 아닌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그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동시에 소련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전쟁의 버튼은 언제나 오만한 권력이 누른다. 그리고 그 권력이 위태로워질수록, 핵은 단추가 아닌 금단의 유혹이 된다.


1. 중·러 독재자는 실권 위기에 처하면 핵전도 불사할 것이다.  


  핵무기는 본래 상대에게 “핵을 사용하면 너도 나도 끝난다”는 공포가 억지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핵 사용 억지가 러시아의 푸틴을 통해서 균열이 생겼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 전선에서 밀릴 때마다 핵 사용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하며 핵 억지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지금 세계는 자유 진영과 전체주의 진영의 대결로 가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핵 사용을 언급하며 ‘심리적 억지’를 무기로 삼았다. 중국은 대만을 향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며 여차하면 핵도 사용할 태세다. 절박한 독재 권력과 기만적 평화와 정치적 목적이 결합하면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생긴다. 

실권 위기의 절박한 독재자에게 핵과 전쟁 억지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이성을 잃은 독재국가의 7천 여발의 핵무기는 전략이 아니라 심리적 탈출구의 수단이 된다. “모두가 죽어도 나만 산다면 그것도 승리다.”라는 독재자의 악성 믿음과 결심이 서면 핵 억지 체제는 일거에 무너진다. 그들은 핵을 사용한 뒤에는 인공지능(AI)의 오작동으로 변명할 것이다. 


2. ‘북한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 삭제는 금단의 유혹   


   북·중·러 세 나라의 공통점은 체제 유지가 국가의 목표다. 그들에게 핵은 협상의 수단이 아니라 정권 유지의 생명줄이다. 체제가 흔들릴수록 핵 사용 가능성은 커진다. 북한은 2023년 9월 핵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법적으로 고착화했고, 중국·러시아와의 군사 연대를 바탕으로 ‘핵전 불사’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핵 벼랑 끝 전술의 제도화로 해석되는데, 북한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은 살인 의도가 있는 자에게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꼴과 같다. 


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몰린 독재자에게는 핵은 금단의 유혹이 될 수 있다. 실권 위기에 놓이면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다. 그의 머릿속은 생존 본능과 권력유지로 단순화된다. 북한 정권이 지속적인 경제 봉쇄, 내부 쿠데타, 민심 이반과 통제 불능의 소요 사태가 생기면 그 마지막 순간의 계산은 이성적일 수 없다. 


막다른 붕괴 직전에 처하면 김정은이는 서해 5도 일부를 점령하고 핵으로 항복을 위협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핵을 사용하는 극단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핵 억지력은 상대의 이성을 전제로 성립하는데, 독재자의 이성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억지력 방정식은 깨진다. 그런 김정은에게 ‘북한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 삭제는 핵 사용 고삐를 풀어주는 짓이다.     


3. 평화라는 선의와 허상이 낳은 전쟁과 패망의 역사 


  평화 정치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위정자의 착각에서 전쟁이 생긴다. 정치인은 표가 되는 “평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미는 평화는 진실보다 계산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다. 1919년 6월 28일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복수를 평화로 포장해 히틀러를 키웠고,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2차 대전을 허용했다. 


파리 평화협정(1973)과 판문점 선언(2018)은 모두 전쟁 종식을 위한 외교적 합의였지만, 실질적 군사 위협을 해소하지 못했다. 파리 협정 이후 북베트남의 재공세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남베트남은 74년 패망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의 도발은 강화되었는데도, 현 정부는 군사정찰과 감시의 눈을 가리고 전투력의 손과 발을 묶었던 항복 수준의 9·19 군사분야합의 부활을 표명했다. 평화를 명분으로 북한의 도발을 감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전쟁 억지력을 약화시켰다. 이는 적의 졸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적행위다.


핵 억지는 말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는 즉시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서에서 삭제한 ‘북한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 종말’이라는 문구를 부활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이 정상화되면 ‘핵 사용 시 정권 종말’ 같은 핵심 억지 문구를 공동성명이 아닌 국회 비준 조약으로 격상해 위정자가 인위적으로 손을 댈 수 없게 해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말과 이념적 의지가 아니라,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준비된 안보'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적이 두려워할 힘을 갖추어야 한다. 역사에서 보듯이 잘못된 평화는 언제나 전쟁을 부르는 초대장이었다. 안보는 위정자가 함부로 다루는 정권의 전리품이 아닌, 자자손손 후대까지 걸친 생존 약속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권이 이념적 목적으로 전투력을 고의로 약화시키고 안보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안보 위원회’ 법제화로 안보 로드맵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한국형 비대칭 응징 체계와 원잠·정찰 위성 조기 확보를 통한 입체적 억지력 증진과 동시에 국민의 감시와 예비역의 각성으로 위장평화로 적에게 놀아나는 반국가 반군 행위를 견제하고 응징해야 한다.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선견(先見) 진심을 전한다.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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