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오천 년 역사에 순수한 민중봉기에 의해 정권이 바뀐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왕이 죽어서 왕위 계승권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경우와 대한민국 건국 후 생긴 제도인 선거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 경우 말고는 모두 하나같이 국민들의 의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이 지배층 인간들 자기들 끼리의 권력 쟁탈전에 의한 탈법적인 정권교체가 전부였다.
물론 우리에게도 과거에 임꺽정이나 장길산등의 천민의 난이나 심지어 만적의 난 같은 노예반란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과 활동이 사회 계층간의 장벽을 넘어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번지지를 못했었고,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의 변화가 있었던 적도 없었으며 반란이 진압되고 나면 도리어 기득권자들에 의한 더 혹독한 압제를 불러왔을 뿐이었다.
우리 민족사에서 민중봉기에 의해 정권이 바뀐 사건이 있었다면 1960년 4월 19일에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서 들고 일어난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가 일주일 만에 대통령 직을 사임하면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던 사일구 혁명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가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분이었기 망정이었지 다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면, 특히 대한민국이 북한같은 체제였다면 꿈도 꿀수없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이 것을 순수한 민중봉기에 의한 정권교체라 하기에는 약간의 하자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때 대통령 직을 사임한 이승만 박사는 시위하다가 다친 학생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해서 “옳지않은 일에 분노하고 항의한” 학생들을 칭찬하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사일구 혁명의 성공에는 우리들의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 만이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수준도 기여했던 것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의 이러한 면을 놓고 볼 때 이승만 박사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논리상 하자가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다들 나의 이 말에 펄쩍들 뛰기 전에 한번 더 생각들을 해 보시기 바란다.
독재자가 “국민의 뜻이라면…” 하면서 순순히 물러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엄밀히 말해 4.19 혁명은 민중의 작품이 아니라 이승만 박사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작품이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아무리 양보를 해도 사일구 혁명은 이승만 박사와 국민의 공동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사일구 혁명은 이승만 박사의 작품”이며 백번 양보해도 이승만 박사의 공이 90%, 학생들의 공이 10% 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군 성조 이래 우리 민족이 항상 왕정체제하에서 억압을 받고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민족의 마지막 왕조시대였던 조선 오백년간은 참으로 오천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들게 살아야 했던 지옥같은 암흑의시대요 고난의 시대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에 조선의 사회가 유럽의 프랑스나 영국같이 기독교적인 사상이 문화의 바탕에 깔려있는 사회였더라면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프랑스의 칠월 혁명같은 극단적인 유혈혁명이 일어났어도 몇 번은 일어났을 것이고 숱한 왕들과 양반들의 모가지가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선 정부는 유교철학, 그것도 유교학파중에서도 가장 비 실용적이고 비 민주적이고 비 인도적인 주자학을 통치철학으로 채택해서 나라를 외부와 단절시킨 상태에서 국민들을 개돼지로 취급하면서 체념속에서 살도록 세뇌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개돼지로 사는 것이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 완전히 임프린트 되어 버렸는지 조선이 망하고 우리 민족이 서구문화에 눈을 뜬지 백년이 넘은 지금도 한반도 북쪽에서는 이조시대보다 더한 極超 暴政體制가 건재해 있고 남쪽에서는 누가 보아도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가 삼위일체로 탈법의 극치를 달리면서 나라의 안보와 경제와 정치와 외교의 모든 구조가 완전히 와해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국민들은 혼자 집보던 주인집 딸이 강도에게 겁탈당하고 있는데 오양간에서 그저 되새김질이나 하고 있는 소 같은 표정이다.
아직도 남한과 북한에 민중봉기가 일어나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한의 “반미친중종북주의-기회주의수구꼴통”의 연합정부를 전복하고 통일까지는 안가더라도 남북간에 평화적인 자유왕래가 보장되는 평화공존체재가 한반도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경계지능의 사람이 미분적분학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처럼 돌아도 몇 바퀴는 돈 사람일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일일이 예를 들며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알고 싶거던 지난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20년간 남북에 있어온 일을 훑어보기 바란다.
특히 남한을 보면 국민들의 정신상태로 시작해서 사회의 모든 인프라가 완전히 와해되어 “이것도 나라냐?”하는 조롱섞인 한탄이 저절로 나온다.
가장 형편없었던 구 한말 시대도 이것보다는 나았다.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유신독재가 한창 기승을 떨치던 칠십년대에 유신체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에 유료광고를 싣는 것을 정부가 금지했던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전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 동아일보 구독자 수가 급증했었는데 바로 이것이 유명한 “동아일보 광고사태”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의원들은 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는 국민을 억압하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인데 대한민국정부가 같은 정책을 편다면 국민들의 반공의식은 약화될 것이다”는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냈었다.
이럴 정도로 대한민국은 여야없이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대한 대비와 정신무장이 철저했었던 당시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런데 사일구 혁명 당일에 태어난 아기가 오늘로 환갑이 까맣게 넘어갔을 정도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나 국민의 의식수준은 도리어 후퇴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보면 “사일구 때 이승만 박사가 스스로 물러난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80년대에 새로이 들어선 군부정권은 이전의 유신체제의 기본 이념이던 반공주의에 대체할 새로운 국가이념의 도입없이 사상적으로 공백이 생긴 상태에서 막연히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정치활동의 방향에 대해 지나친 관용을 베풀었었다.
이때문에 무중력 상태에서 뿌리와 가지가 아무 방향으로나 뻗어난 식물같이 기형적인 정치사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에 발생한 이념적 혼란이 그러한 퇴보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적 혼란을 틈타 사상적인 뿌리가 불분명한 각종 사이비 민주화 그룹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에 의해 사일구 정신에다 자꾸 이상한 색갈을 칠하려 드는 시도가 행해져 오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이것은 역사 왜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참으로 잘못된 행위이다.
그래서 사일구 정신을 확실히 되새겨 보기 위해 사일구 때 시위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구호 하나를 아래다가 인용한다.
“民主主義 死守하여 共産主義 막아내자.”
이 구호에서 사일구 시위학생들이 사용했던 民主主義란 용어는 서구식 自由 民主主義를 말함이었지 자칭 민주화투사라는 운동권 인간들이 선호하는 共産主義식 廣場 民主主義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 누가 이 구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다시한번 自嘲섞인 질문을 던져본다.
“이것도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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