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야외 대형무기전시장. 우리는 관습적인 용어도 개선해야 한다. 전쟁의 참극을 ‘기념(記念)’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미일보
6·25사변(事變) 발발 76주년이다. 6·25사변은 소련과 중공의 사주를 받은 희대의 전범자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고, 사변(事變)으로 남북을 포함한 참전국에서 총인원 500만 명의 사상자와 1000만 이산가족이 생겼다. 6·25사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 최대 규모의 비극적인 세계전쟁이었다.
6·25사변의 최대 피해자인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전쟁을 일으킨 북괴와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전쟁에 개입한 중공은 주적이며, 미군을 비롯한 16개 참전국과 24개 전쟁 물자와 의료 장비 지원국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우방이다. 우방국의 참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6·25사변의 실체와 기억과 기록이 생생한데, 최근 전쟁기념관의 ‘항미원조(抗美援朝)’ 비교 게시물 논란은 우리가 역사 전쟁에서 얼마나 무지하고 무방비한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6·25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단어는 실체를 규정하고 이름은 사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우리는 6·25를 단순히 ‘6월25일’이라는 날짜로만 부른다. 이는 전쟁 안에 담긴 우방국가와 함께 지킨 자유수호와 반공전쟁과 전몰장병의 희생의 가치를 스스로 지워버린 꼴이 되었다. 반면 북괴와 중공 등 전범국들은 목적 지향적인 명명(命名)으로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하고 있다.
1. 공산국의 6·25전쟁 명명에 숨어 있는 공산화 전략 간파해야 한다
북괴는 6·25사변을 기습 남침에 의한 전범(戰犯)의 실체를 감추고 적화 통일의 명분을 담은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 점거한 집단다운 작의적 전쟁 명칭이다.
중공은 1950년 10월부터 조선의용군 출신들로 구성된 중공군 팔로군 4개 사단(약 8만 명) 투입을 시작으로 연인원 240만 명을 투입한 주변국 침략인데, 적반하장격으로 유엔군의 개입을 불법으로 매도하며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는 뜻의 ‘항미원조’라는 중화적 포장지로 6·25사변을 자기들 개념으로 박제했다. 중공이 내세운 명분은 철저히 자국 중심의 패권적 사고다.
북괴와 중공의 6·25 명명에는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점령하기 위한 치밀한 공산화 전략이 담겨 있다. 반면, 우리가 무심히 국제 용어처럼 사용하는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은 전쟁의 주범인 북괴와 소련과 중공의 전쟁 책임을 흐리고, 전쟁을 단순한 한국 내전으로 축소할 의도와 위험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은 ‘공산국에 의한 침략 전쟁’을 우리가 자유우방과 함께 ‘공산국 침략을 패퇴시킨’ 반공전쟁이자 세계대전 성격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공산 좌파적 역사관을 반영한 전쟁 명칭이다. 자유 우파는 ‘한국전쟁’을 언급하면 안 된다.
2. 6·25는 다만 휴전 중인 전쟁인데 전쟁 이름은 제각각
지금 한반도는 6·25를 일으킨 북·중·러의 밀착과 중공의 두만강을 교두보로 동해 진출 시도, 대미 보복 의지를 담은 백서들이 쏟아지는 엄중한 시기인데, 우리는 안보 파괴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굵직한 안보 파괴 목록만 20여 가지가 넘는다.
안보 역사를 모르는 국가와 국민은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도 지키기 어렵다. 전쟁의 성격조차 명명하지 못하는 국가에 안보는 사치다.
우리는 ‘6·25사변’ ‘경인동란’ ‘한국전쟁’ 등 파편화된 용어를 저마다 사용하고 있다. 공산국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하고 천문학적인 전쟁 물자를 지원한 미국은 6·25전쟁 기간 중 총 사망자 3만6574명, 부상자 10만3284명, 실종되거나 포로가 된 인원 7140명 등 인명 손실을 보았다.
미국은 6·25전쟁을 한국전쟁,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알려지지 않은 전쟁(The Unknown War)으로 부른다. 한미가 사용하는 전쟁 명칭은 모두 그 전쟁이 왜 일어났고, 무엇을 지켜냈는지에 대한 본질은 희미하다.
3. 6·25를 ‘한국반공전쟁’으로 정명(正名)해야 한다
6·25를 ‘한국반공전쟁’으로 정명(正名)해야 하는 이유는 전쟁의 본질을 복원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함이다. 적국은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라는 목적 지향적 명칭으로 침략을 정당화하지만, 중립적인 ‘한국전쟁’은 전범국인 북한·중공·소련의 책임을 희석하고 전쟁을 단순 남북 내전으로 축소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전쟁’에 ‘반공’을 결합한 ‘한국반공전쟁’으로 명명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 전체주의 침략을 패퇴시킨 역사의 핵심을 담고 ‘반공’으로 중공의 초한전에 의한 공산화를 막고 자유 수호라는 국가 정체성을 다음 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한국반공전쟁’으로 정명해야 한다.
4. ‘한국반공전쟁’의 6·25 역사를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
헌법은 국민적 합의의 결정체이자 미래로 나아가는 지표다. 헌법 전문에 ‘한국반공전쟁’을 명시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의 국난을 극복한 자유 수호의 역사를 공표
대한민국은 1948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출발했고, 6·25를 통해 그 자유민주 체제를 피로써 지켰다. 3·1운동의 임시정부 법통과 4·19의 민주 이념을 잇는 가교가 바로 6·25 ‘반공정신’이다. 우리 헌법에 반공전쟁의 역사와 자유수호 정신을 명시함으로써, ‘자유를 위해 싸우는 나라’라는 정체성을 우방과 다음 세대에 확고히 물려줄 수 있다.
둘째, 중공과 북한의 전쟁 왜곡 시도에 대한 강력한 헌법적 방어기제
북괴와 중공이 6·25전쟁을 ‘내전’이나 ‘해방 전쟁’으로 규정한 이유는 향후 미군 철수와 연합군 개입 차단을 노리는 꼼수다. 우리가 이를 ‘한국반공전쟁’으로 헌법에 명확히 규정한다면, 이는 국제사회를 향한 우리의 흔들림 없는 안보 의지를 천명하는 강력한 법적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는 관습적인 용어도 개선해야 한다. 전쟁의 참극을 ‘기념(記念)’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희생을 기리고 가치를 마음에 새기는 ‘한국반공전쟁 기억식(記憶式)’이나 ‘한국반공전쟁 상기 행사’로 명칭을 전환해야 한다. 40개국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자유수호’라는 이름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다.
5.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국가와 국민에게 현재와 미래가 있다
광화문 감사의 정원 태극기 아래 동판에, ‘대한민국은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켰고, 앞으로도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을 새겨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 속에 ‘한국반공전쟁’의 역사를 당당히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번영을 누리는 이유이자, 제2의 6·25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신적 무장이다.
이 명징한 진실과 역사적 사명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반영하고 헌법에 새기는 일은 지금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역사의 명령이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