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오른쪽) [연합뉴스]
# 결과보다 과정이 국민의 신뢰를 만든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도박사와 AI의 예측을 모두 빗나가게 만들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한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경기 내용은 졸전 그 자체였다. 결국 대표팀은 32강 토너먼트 진출에도 실패했고, 국민에게 남긴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그러나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번 대회의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제기됐던 절차적 논란이 오늘의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월드컵 감독 선임 당시 축구계 안팎에서는 공정한 경쟁과 충분한 검토, 합의를 거친 결과라기보다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형식만 갖춘 이른바 '답정너'식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후 홍 감독은 취임 초기부터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안은 채 출발했고, 그 불신은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32강 탈락 후 귀국해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이 듣고 싶었던 말은 단순히 패배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있었어야 할 것은 왜 대표팀이 그렇게 무기력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과 냉정한 복기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왜 조직력이 살아나지 못했는지, 왜 전략과 전술이 보이지 않았는지, 왜 선수들과 감독 사이의 신뢰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기자회견의 핵심은 "국민은 승리라는 결과를 원했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취지의 메시지였다. 이는 국민의 바람을 오독하는 것이다.
우리 축구팬과 국민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비록 경기에서 패배했더라도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감독이 치밀한 전략과 전술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국민은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지켜본 것은 달랐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불화 논란, 선수들 간 유기적인 호흡이 살아나지 못한 경기 운영, 방향성을 찾지 못한 전술과 무기력한 경기력이었다. 국민이 실망한 이유는 패배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내용 때문이었다.
# 정치권, 홍명보식 사과의 과오를 되풀이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위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제도이다.
절차적 정당성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결과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신뢰의 토대이며,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과정이 공정했다는 믿음이 있다면 의견이 달랐던 사람들일지라도 그 결과를 존중한다.
최근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는 결코 단순한 행정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용서받지 못할 참정권 훼손 행위였다.
일부 정치권에서 발 빠르게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런 진상규명 없이 무턱대고 조직부터 없애서는 안 된다. 검증 없이 기관만 해체하는 것은 국민의 바람을 읽지 못했던 '홍명보식 사과'와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철저한 검증 없이 몇몇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로 사태를 마무리한다면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질 뿐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도 개선이 뒤따를 때 비로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 절차를 왜곡시킨 목적은 언제나 처참하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는 '지상낙원', '인민의 천국'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내세웠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 절차를 왜곡시킨 결과는 참혹했다. 스탈린의 대숙청과 히틀러의 나치 독재는 모두 '국가'와 '인민'이라는 거대한 명분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무너뜨린 데서 시작됐다. 절차를 잃은 권력은 결국 폭력이 되었고, 수많은 희생 끝에도 그들이 약속했던 이상향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절차를 통해 권력을 제한한다. 공정한 경쟁과 법치, 투명한 검증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 위에서 국민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발휘된다.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쟁력도 결국 이러한 제도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축구와 민주주의의 공통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축구에서 원하는 것은 승리의 트로피만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납득할 수 있는 경기 내용을 원하는 것이다. 비록 패배했더라도 그 과정이 훌륭했다면 국민은 경기를 즐겼을 것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관위 사태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사불란한 결론이 아니다. 그동안 선관위를 둘러싸고 제기되어 온 각종 의혹과 부정선거를 의심하게 하는 여러 정황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검증을 통해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선관위의 존폐는 그다음 문제다.
충격적인 월드컵 32강 탈락도, 선관위의 참정권 훼손 사태도 철저한 검증과 냉정한 복기를 거칠 때만이 비로소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고 성장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축구든 민주주의든 성장의 출발점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과는 수많은 과정의 산물이다. 민주주의도 축구도 그 원칙만은 결코 예외일 수 없다.

◆ 민병곤 작가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국민의힘 충남도당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