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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엄마·아빠를 ‘보호자 1·2’로 바꾸자?
  • 松山 작가
  • 등록 2026-07-22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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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학교 서류나 공식 문서에서 ‘엄마’와 ‘아빠’ 대신 ‘부모 1’, ‘부모 2’ 또는 ‘보호자 1·2’로 바꾸자는 주장이 여러 나라에서 나왔다. 

 

프랑스 국회가 2019년에 학교 서류 용어를 바꾸는 안을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뒤 이어진 이 움직임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다. 가족의 본질과 사회 질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의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엄마와 아빠는 자연스러운 사실이자 오랜 문화에서 늘 사용해온 호칭이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태어나고, 이 두 사람이 서로 도우며 아이를 키운다. ‘엄마’라는 말에는 임신하고 낳고 돌보는 구체적인 경험이, ‘아빠’라는 말에는 지키고 책임지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이런 호칭은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과 마음의 유대를 튼튼하게 해준다. 이를 중립적인 기능적인 말로 바꾸는 것은 가족을 ‘자연적·문화적 실재’에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 생각이 좌파적 사회관과 깊이 연결되는 이유는 진보적·현대적 사고에서 가족을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유연한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sex)은 사회적 젠더(gender)로 해석되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가부장제’나 ‘이분법적인 억압’의 결과물로 비판받는다. 

 

그래서 모든 가족 형태(동성 부부, 혼자 키우는 부모, 대리모 가정 등)를 똑같이 인정하기 위해 성별·자연적인 구분을 없애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나온다. ‘보호자 1·2’는 바로 그런 ‘포괄성’을 위한 도구다.

 

이런 접근은 좌파적 가치의 여러 부분과 잘 맞아떨어진다. 

 

첫째,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이 성 역할과 가족 형태를 마음대로 정할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전통적인 규범을 제한으로 본다. 

 

둘째, 국가와 집단의 역할을 키운다. 전통 가족이 강하면 개인은 가족에게 의지하지만, 가족 기능을 약하게 만들면 복지·교육·행정 기관이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일부 급진적인 의견에서는 가족 자체를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도구로 보고, 공동으로 키우거나 국가가 더 개입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셋째, 형식적인 평등을 강조한다. 좌파적 관점은 자연적·문화적인 차이를 ‘차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엄마와 아빠의 구분이 소수 가족에게 소외감을 준다는 이유로 문제 삼지만,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익숙한 현실을 희생시키는 역설을 낳는다. 

 

미국 뉴욕주에서 최근 ‘mother(어머니)’를 ‘임신하는 parent(부모)’, ‘father(아버지)’를 ‘임신하지 않는 parent’로 바꾸려 한 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지지자들은 “비전통 가족의 아이들이 서류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자”고 말한다. 실제로 가족 형태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과 정도다. 

 

대부분의 아이는 여전히 생물학적인 엄마와 아빠에게서 태어나 자란다. 호칭을 관료적이고 중립적인 말로 바꾸는 것이 진짜 포용인지, 아니면 다수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우는 언어 조작인지는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변화가 가족의 끈을 약하게 하고 관계를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호칭이 주는 따뜻한 감정을 추상적인 기능어로 바꾸면 부모와 아이의 유대가 희미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성별 구분 해체, 어린 나이부터 젠더 교육, 부모 권한 줄이기로 이어지는 ‘미끄러운 경사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부모의 교육 참여를 ‘방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결국 이 논쟁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다. 한쪽은 가족을 유연하게 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고 국가와 개인 자유가 이를 새롭게 짜야 한다고 본다. 다른 쪽은 가족을 자연 질서와 오랜 문화 기반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함부로 해체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엄마·아빠’를 ‘보호자 1·2’로 바꾸면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진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대부분이 공유하는 자연스러운 현실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것은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진정한 포용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고, 현실 속에서 조화롭게 함께 사는 데 있다. 이 논의가 가족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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