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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둥근 사각형을 구하는 국민의힘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24 1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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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을 보고 있으면 가끔 철학에서 말하는 ‘둥근 사각형(round square)’이 떠오른다. 둥글면서 동시에 사각형인 도형은 존재할 수 없다. 사각형이라면 모서리가 있어야 하고, 완전히 둥글다면 그 순간 사각형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자주 구한다. 보수이면서 보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고, 우파의 지지를 받으면서 우파와 거리를 두고 싶으며, 야당이면서 정권과 싸우는 부담은 지고 싶지 않다. 국민의힘이 지금 찾고 있는 것도 그런 둥근 사각형처럼 보인다.

정당에는 정체성이 필요하다. 정당은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친목단체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시장과 국가, 개인과 공동체, 안보와 평화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 자신의 선택을 밝히고 그 선택에 동의하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보수정당은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말해야 하고 진보정당은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선거에서 중도층이 중요하다는 말은 맞다. 어느 정당도 자기 지지층만으로 집권하기 어렵다. 문제는 중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중도는 아무 주장도 하지 않는 정치적 무색무취가 아니다. 자기 원칙을 가진 정당이 그 원칙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더 많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외연이 확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갖고 있던 가치까지 희석하고 상대방의 주장과 비슷해지면 중도가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은 외연 확장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포기일 수 있다.

보수정당이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말하면 극우로 몰릴까 걱정한다. 노동개혁을 말하면 표가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감세를 주장하면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움츠러든다.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강조하면 냉전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하고,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하게 주장하면 친미·친일이라는 공격부터 의식한다. 역사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통설과 다른 연구가 나오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기보다 정치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부터 계산한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국민의힘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보다 세금을 조금 덜 올리는 정당인가? 민주당보다 규제를 조금 덜 만드는 정당인가? 민주당보다 북한을 조금 더 경계하고, 민주당보다 미국과 일본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당인가? 

이런 ‘조금씩 다른 민주당’이 보수정당의 목표라면 유권자는 굳이 국민의힘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원본과 복사본이 있다면 사람들은 대개 원본을 선택한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패배보다 자기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패배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지 알 수 없게 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지지자들도 정당에 모든 정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적어도 중요한 문제에서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는 보여달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한미동맹, 사유재산권, 작은 정부, 책임 있는 재정, 기업과 개인의 자유 같은 가치들은 낡은 구호가 아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기본 원리다. 보수정당이라면 이러한 원칙을 시대에 맞게 설명하고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복지정책도 확대할 수 있고 노동자를 보호할 수도 있다. 환경정책도 추진할 수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의 역할도 인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보수가 아니라는 사실과 동시에, 상대방 정책을 조금 완화해서 따라가는 것 역시 보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의 더 큰 문제는 싸움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태도에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정당 간 충돌은 비정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집단이 경쟁하기 때문에 정당이 존재한다. 물론 욕설과 폭력, 근거 없는 선동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논쟁과 대립까지 피할 이유는 없다. 야당이라면 정부 정책 가운데 잘못된 것을 찾아내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당의 권력이 강할수록 야당의 견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런데 비판해야 할 때마다 “국민이 싸우는 정치를 싫어한다”는 말부터 꺼낸다면 야당의 존재 이유부터 희미해진다.

싸우지 않는 것과 품격 있는 것은 다르다. 비겁한 것과 온건한 것도 다르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고, 막말하지 않으면서 강하게 반대할 수 있다. 사실과 논리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이 민주정치의 정상적인 싸움이다. 정치적 온건함이란 자신의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문명적인 방법으로 관철하는 태도다.

국민의힘이 중도를 얻겠다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중도로 갈 것인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이 중도로 이동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와 법치, 안보와 자유라는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중도층을 설득해야 한다. 중도 유권자가 보수정당으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이지, 보수정당이 자기 색깔을 지운 뒤 중도라는 이름의 빈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치는 아니다.

특히 역사와 이념 문제에서 이러한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형성, 한미동맹의 역사적 역할, 북한 체제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한국 보수정당의 정체성과 직접 연결된다. 

역사 문제에서 다른 견해가 존재할 수 있고 학문적 논쟁도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공격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기 진영 내부의 연구와 토론까지 외면한다면 그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지적 빈곤으로 이어진다.

보수정당은 보수 지식인과도 싸우고, 보수 시민사회와도 거리를 두면서 선거 때가 되면 그들의 표와 조직만 필요로 해서는 안 된다. 지지층은 현금자동인출기가 아니다. 정당이 어려울 때 표를 주고 선거운동을 해주다가 선거가 끝나면 극단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면 충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핵심 지지층을 존중하면서 그 밖의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외연 확장이다. 핵심 지지층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중도층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외연 확장이 아니라 지지층 교체라는 위험한 도박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과거의 보수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보수도 변해야 한다. 청년의 고용과 주거 문제, 저출생과 고령화, 인공지능과 산업구조 변화, 연금과 국가채무, 수도권 집중 같은 문제에 과거의 답안만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화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대에 맞게 보수를 현대화하는 것과 보수의 내용을 지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건물을 고치는 것과 건물의 기둥을 뽑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정당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면 아무도 그 정당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정치에서 지지를 얻는 데에는 때로 반대를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정책을 선택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떤 역사관을 제시하면 비판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떤 외교노선을 택하면 다른 선택을 원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고 모든 집단의 요구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정치적 환상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중도로 가는 것도,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대답하는 일이다. 

왜 자유를 지켜야 하는가? 왜 시장경제가 필요한가?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삶에 개입해야 하는가? 기업과 노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북한을 어떤 국가로 볼 것인가? 미국과 일본은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성취와 실패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설득해서 지지를 넓히는 것이 정치다. 처음부터 욕먹지 않을 답,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답, 좌우 모두 박수칠 답을 찾으려 하면 끝내 아무 답도 내놓지 못한다.

둥근 것은 둥근 것이고 사각형은 사각형이다.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도형은 없다. 보수의 표는 받고 싶지만 보수라고 불리기는 싫고, 야당의 권리는 누리고 싶지만 싸움의 책임은 지기 싫으며, 중도를 얻고 싶지만 무엇으로 그들을 설득할 것인지는 말하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이 찾는 것은 새로운 보수가 아니다. 둥근 사각형이다. 그리고 둥근 사각형은 정치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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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8-24 13:29:43

    적극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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