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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정치 승려의 삶도 평가해야 한다… 명진스님 입적이 남긴 것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24 20: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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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22일 입적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명진스님의 입적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니 애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그가 생전에 걸어온 정치적 행보를 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명진 스님처럼 종교인의 범위를 넘어 현실정치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던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명진스님은 조계종 내부 개혁에 참여했고 종단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까지는 종교 내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대통령과 정부, 정당과 정치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했고 특히 이명박정부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명진이라는 이름은 불교계보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더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종교인이 정치적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승려도 국민이고 시민이다. 정부를 비판할 수도 있고 대통령을 공격할 수도 있으며 특정 정책에 반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주장이 결합할 때 발생한다. 승복을 입고 하는 정치적 발언은 일반 시민의 발언보다 훨씬 큰 상징적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종교인의 현실정치 참여에는 그만큼 더 엄격한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명진스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권력을 비판하는 종교인의 위치에 있으면서 점차 특정한 정치적 진영과 가까운 인물로 인식됐다. 

보수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지만 진보진영의 권력과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과연 같은 강도의 잣대를 적용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권력을 비판한다는 명분은 그 비판이 어느 권력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정치적 편향성은 종교인의 사회참여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다.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세력의 잘못에는 분노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세력의 잘못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력에 대한 종교적 비판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실상 정치적 선택에 가깝다. 정치적 선택 자체는 개인의 권리지만 그것을 종교적 권위로 포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명진스님을 ‘권력에 맞선 승려’라고만 설명하는 것도 그래서 부족하다. 그가 맞섰던 권력이 어떤 권력이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보수정권을 공격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권력비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권력비판이라면 자신이 지지하거나 가까이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도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평가하는 기준부터 심하게 정치화되어 있다. 보수 성향의 목사가 집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면 곧바로 ‘정교분리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진보 성향의 신부나 승려가 정부를 규탄하고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면 ‘시대의 양심’ ‘행동하는 종교인’이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이런 이중잣대가 반복돼 왔다.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보수 목사의 정치참여만 옹호하고 진보 승려의 정치참여를 금지하자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정치적 발언의 권리는 인정하되 그 발언은 종교적 권위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명진스님의 정치적 주장 역시 예외일 이유가 없다.

특히 승려의 본령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을 중시한다. 그런데 현실정치란 권력의 획득과 행사, 정당과 세력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영역이다. 승려가 현실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것과 정치적 진영의 전사가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명진스님을 둘러싼 논란에는 바로 이 경계가 흐려졌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종단개혁을 요구하는 승려에서 정부를 공격하는 사회운동가로, 다시 정치적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는 유명인으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그 결과 대중에게 명진이라는 이름은 선승이나 수행승의 이미지보다 ‘정치하는 스님’이라는 이미지로 훨씬 강하게 남았다.

그것은 본인이 선택한 삶이었다. 따라서 그 선택 역시 평가받아야 한다.

입적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대대적인 추모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생전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단지 한 승려의 수행 생활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정치적·사회적 활동을 함께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편에서 그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하는 것 역시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죽음이 생전의 정치적 행적까지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치적 발언을 통해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라면 그 발언이 얼마나 일관됐는지, 특정 진영에 편향되지는 않았는지, 종교적 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진 스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확인된 사실 이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현재까지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다면 사고 경위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말과 행동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명진 스님은 평생 권력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비판한 것은 정말 ‘권력’이었는가, 아니면 자신이 반대하는 ‘권력’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검토 없이 명진 스님을 ‘권력에 맞선 시대의 양심’으로만 기억한다면 그것은 평가라기보다 추모를 위한 정치적 미화에 가깝다. 반대로 그의 모든 활동을 정치적 편향 하나로 지워버리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종단개혁과 현실정치 참여는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명진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필요한 것은 성역화도 조롱도 아니다. 한 인간의 죽음에는 예의를 갖추되 공적 인물의 삶에는 냉정한 평가를 적용하는 것이다. 스님의 죽음은 애도한다. 그러나 정치승려 명진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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