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일 자유주의작가회의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관련 발언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규나 작가의 ‘표현의 자유 수호’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미일보
김규나 작가의 재판 선고가 또 연기됐다. 지난 4월 재판을 마친 뒤 5월로 예정됐던 선고가 6월로, 다시 8월로, 이제는 가을로 넘어갔다. 벌써 네 차례다.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판결의 내용 못지않게 이 긴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형벌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선고 연기만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단정할 수는 없다. 기록 검토가 더 필요할 수도 있고 법리적 판단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재판이 이미 끝난 뒤 선고기일이 거듭 변경된다면 당사자가 의문을 품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역사 문제와 표현의 자유가 얽힌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다시 5·18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언론이 가세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관한 논쟁이 어느새 정치적 충성심을 가르는 문제처럼 변해간다. 이런 분위기에서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법원이 필요하다.
법원은 여론이 조용할 때만 법대로 판결하는 기관이 아니다. 사회적 압력이 거셀수록 법률과 증거만을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사법부다.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고려해야 할 것은 거리의 구호도 아니고 정치권의 눈치도 아니며 특정 단체의 항의 가능성도 아니다. 적용 법률과 증거, 그리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에 관한 형사재판이라면 더욱 엄격해야 한다. 어떤 표현이 불쾌하고 거칠며 다수의 역사인식과 충돌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국가가 형벌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논쟁적이고 불편하며 때로는 사회적 반발을 일으키는 주장까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따지는 데 표현의 자유의 본질이 있다.
김규나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느냐 역시 형사재판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작가의 역사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판하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상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과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반박할 수 있는 말은 원칙적으로 말로 반박하는 것이 자유사회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번 재판은 김규나 개인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선다.
오늘 김규나의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벌의 문턱을 낮추면, 내일은 정반대의 정치적 환경에서 다른 사람의 표현이 같은 방식으로 처벌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주장에도 적용될 때 비로소 권리가 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법보다 정치가 앞서고, 정치보다 집단적 압력이 앞서는 사회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 항의한다고 법률의 의미가 달라지고, 목소리가 크다고 형사책임의 범위가 넓어진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다. 법원이 그런 압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누구에게 자신의 자유를 맡길 것인가.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면 사회 분위기가 어떻든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반대로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한 법리와 증거를 판결문에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판사의 책무다.
김규나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대우가 아니다. 법대로 재판받을 권리다.
나는 다음 선고기일에는 재판부가 더 이상 정치적 소음이나 사회적 파장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법률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기를 바란다.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무죄를 선고하라. 판사의 용기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여론이 어느 쪽으로 몰려가든 법이 가리키는 곳에 판결문을 놓는 데 있다.
법 위에 정치가 있고, 정치 위에 떼법이 있는 나라에서는 자유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김규나 작가의 재판에서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한 작가의 승패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원이 시끄러운 여론 앞에서도 법을 말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