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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군사교리를 모르는 무지인가? 적을 돕는 이적행위인가?
  • 박필규 편집위원
  • 등록 2025-12-22 08: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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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방 교전 판단을 흔드는 정치 언어의 치명적 위험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야간 경계근무에 투입된 병사가 투광등이 환하게 밝힌 철책과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위원·육사 40기국방부는 11월17일 군사분계선(이하 MDL) 침범 현상과 관련 군사회담 제안에 이어 최근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에 북한군이 MDL을 넘어 남측 지역으로 침범했을 때 “경고 사격이 필요한지에 대한 상황 평가부터 면밀하게 하라”는 방침을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기존의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 절차에 정무적 판단을 개입시킨 조치로 현장의 선조치 후보고 개념에 제동을 걸고, 즉각 결심과 대응 지연으로 최전방 장병의 불필요한 희생을 또 유발할 우려가 크다. 


즉각 대응 지연의 위험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 사례가 2002년 제2연평해전이다.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이하 NLL)에서 적용된 교전 절차는 경고방송 → 시위기동→ 차단기동 →사격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였다. 북한 경비정이 근접 기동으로 거리를 급격히 좁히는 동안 현장 지휘관의 결심은 보고 절차에 묶여 지연됐고, 결과적으로 우리 고속정은 불리한 조건에서 선제 타격을 받아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해군이 교전 절차를 단순화하고 ‘밀어내기’ 개념을 배제한 것은 상황판단의 면밀함보다 즉각 대응이 전투 장병의 생존을 보장하고 억제력을 만든다는 교훈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오판보다 결심 지연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MDL과 NLL은 초 단위로 상황이 압축되는 공간이다. 지근거리 대치 공간에서 침범의 의도와 성격은 사후 분석의 대상이지, 현장에서 경계하는 장병이 즉시 판별 가능한 정보가 아니다.  


2025년 북한군의 MDL 침범은 총 16차례로,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최근 한 달 사이 10회의 침범이 집중 발생했으며, 주요 지역은 강원 고성과 경기 연천 등이다. 지형 착오 외에도 작업 중 의도적 침범 가능성이 제기되며, 군은 정전협정 절차에 따라 원칙 대응을 했는데, 국방부의 최근 지침은 억지력 약화와 적에 의한 의도적  충돌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DMZ 출입 승인 법안을 둘러싼 유엔사의 공개 반론은 정전협정 질서와 한미 공조의 균열 가능성까지 키운다.


군은 원래 적이 침범해도 무차별 사격을 하지 않았다. 경고방송, 경고사격, 대응(조준)사격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교전 개념은 이미 제도화돼 있다. 문제는 ‘상황 평가부터 면밀하게 하라’ 지침은 결심과 대응 시간과 지휘 책임의 혼돈을 초래한다. 누가 최종 결심을 하는지, 그 결심은 몇 초 안에 내려져야 하는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교전 현장은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곧 보고 우선, 결심 지연으로 무고한 희생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유엔군사령부의 교전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 정전협정에 기반한 유엔사의 교전 원칙은 사전 승인보다 현장 지휘관의 즉각적 판단과 비례적 대응을 중시해 왔다. 이는 공격적 개념이 아니라, 적의 침범은 즉시 제지하여 충돌을 단시간에 종결시키기 위한 최소 억제 논리다. 국방부의 현장 판단을 지연시키는 모호한 지시는 유엔사의 교전 원칙과도 충돌한다.


북한의 교전 수칙은 더욱 단순하다. 북한군의 대남 교전 개념은 선제성, 속도, 현장 재량의 극대화를 전제로 한다. 경고나 단계적 절차보다 기회 포착 즉시 타격을 중시하며, 우선 조치가 보고와 사전 승인보다 앞서는 구조다. DMZ와 NLL에서 반복된 도발 사례는 북한이 전투 조치를 지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적은 아군의 결심과 대응이 느릴수록 도발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군사적 억제는 선의를 가정하지 않는다. 적의 교전 사고방식을 정확히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한다. 적은 결심을 앞당기는 구조를 유지하는데, 우리는 결심을 늦출 수 있는 지침과 언어를 사용한다면 억제의 균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도발하는 적을 돕는 행위다.


확전 위험을 관리하려면 추상적 당부가 아니라 구체적 대응 지침을 내려야 한다. MDL과 NLL 상황에서 최종 사격 결심 권한은 현장 지휘관에게 있는지, 그 결심은 몇 초 안에 내려야 하는지, 선조치후 최초·중간·최종 보고 표준화 등 모든 게 투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방부의 무책임한 정무적 방침으로 제2 연평해전처럼 아군의 피해가 발생하면 국방부 장관과 합참 의장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전방은 정치적 메시지를 해석하는 공간이 아니다. 전선은 규칙이 즉각 작동해야   생존하는 전장 공간이다. 사전에 징후와 적의 의도를 읽고 적의 도발이 있으면 결심과 대응을 늦추지 않을 때 이길 수 있다. 전방은 정치적 방침과 평화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명확한 교전 규칙과 명확하고 일관된 책임 구조로 지켜진다. 


국방부 장관부터 최전방 수색작전과 매복 작전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영하 20~30도가 오르내리는 최전선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수색작전하는 장병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 막연한 정치적 언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군사교리 관련 지시를 하기 전에 한 번 더 교범과 과거 지침과 전사(戰史)를 살피고, 참모 의견을 듣길 바란다. 


군사원리에 상충되는 지시와 지침과 방침으로 장병을 또 희생시키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한미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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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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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gtk2025-12-22 14:33:16

    이런게 내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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