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 기록에 담긴 결정적인 물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교 세계본부장이었던 윤영호가 9년에 걸쳐 축적해온 기록과 발언들의 존재 여부는 이 사안을 단순한 개인 비리나 일회성 논란으로 넘기기 어렵게 만든다.
대선과 해외 정치권, 종교 단체 등 대외 접촉을 담당해왔던 책임자급 인물이 장기간 보유한 자료의 존재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종교계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아직 자료의 실체가 전면 공개된 적은 없지만, 일부 녹취와 정황만으로도 특검이 가동될 만큼 파장이 작지 않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은 단편적이다.
해외 정치권과 관련된 언급, 종교 단체의 대외 접촉 정황, 내부 의사결정 과정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조각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사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각각의 정황이 고립돼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누적돼 왔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특정 인물의 범죄를 직접 겨냥한 결정적 증거라기보다는, 여러 인물과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는 점이다. ‘9년의 기록’은 사후적 폭로나 책임 회피성 진술이라기보다, 당시 판단과 보고, 승인 과정이 축적된 흔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때문에 수사 역시 단순하지 않다.
의혹의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경로가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진술만으로 범죄를 입증하기 어려운 국면에서, 윤 전 본부장의 발언 하나하나가 수사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대로 윤 전 본부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기록의 범위와 공개 시점을 둘러싼 선택지가 남아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실제 언론 보도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한겨레는 윤 전 본부장과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한학자 총재의 며느리) 간 통화를 근거로, 통일교 측이 국내 20대 대선은 물론 세네갈·짐바브웨 등 해외 대선과 관련해 자금 지원을 했고 그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보도했다. 이는 김건희 특검이 지난 10월 한학자 총재와 윤 전 본부장을 재판에 넘긴 혐의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특검이 윤 전 본부장의 발언을 입증할 물적 증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윤 전 본부장이 보유한 ‘9년의 기록’이 전부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는지다. 현 시점에서는 두 질문 모두 확답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정치권의 태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통상적인 정치 스캔들이라면 방어와 반박이 앞서기 마련이지만, 이번 사안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특검을 받아도 된다’는 쪽으로 기류가 빠르게 이동했다. 이를 두고 결백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해석과, 사안을 제도권 수사 안으로 묶어 확산을 관리하려는 판단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수사 국면에서 주목되는 점은 윤 전 본부장이 아직 이른바 ‘결정타’를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9년이라는 시간과 내부 고위직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이 기록은 단발성 폭로물이 아니라 시간순과 맥락을 중심으로 정리된 자료일 가능성이 크다. 공개된 녹취 외에도 보고서나 서신 형태의 자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동시에 오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확실성 자체가 정치권에는 가장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폭로는 한 번에 끝나지만, 장기간 축적된 정황은 끝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안이 개인 비리나 가십성 논란으로 쉽게 봉합되지 않는 배경에는 통일교 내부의 조건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통일교는 최고지도자인 한학자 총재를 정점으로 한 상징적 권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위기 대응과 대외 결정을 책임질 단일한 컨트롤타워는 뚜렷하지 않다.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구속되면서 대외 협력과 정치권 접점을 총괄하던 실무 축이 무너졌고, 이를 대체할 명확한 체계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에 윤영호 개인과 통일교 조직 간의 관계가 협조 국면을 넘어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도 변수다.
윤 전 본부장은 자신이 수행해온 활동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의 판단과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는 인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해석의 초점이 개인을 넘어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 흐름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지도부 공백 속에서 고위 실무자와 조직이 충돌하는 구도는, 사건을 조기에 봉합하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쟁점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새로운 물증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존 정황과 발언의 해석만으로도 논란은 재점화될 수 있다. 정치권과 종교계가 이 사안을 단순한 스캔들로 취급하지 못하고 장기 리스크로 관리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수사의 질문은 ‘누가 잘못했느냐’에서 ‘어디까지 연결돼 있었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윤영호의 9년 기록이 실제로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물증이 아닌 정황이 장기간 축적돼 왔다는 점, 그리고 그 정황이 개인을 넘어 조직 전반의 흐름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도, 종교계도, 그리고 여론도 유난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건희 특검은 지난 10월, 한학자 총재와 윤 전 본부장 등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별로 국민의힘 측에 2억1000만 원을 지원하도록 지시하고, 네팔·세네갈 등 해외 국가에 60만 달러(약 8억8000만 원)를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재판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