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청와대로 이전하기 전인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어느 순간부터 보안 사고가 아니라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이 됐다.
사건의 실체가 완전히 규명되기도 전에 대통령의 발언이 먼저 나왔고, 국회와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연쇄적으로 뒤따랐다. 그 결과 논란의 중심은 개인정보 유출의 규모와 책임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로 옮겨갔다.
이번 사태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 않았고, 형식상 행정적·사법적 지시는 아니었다. 법률적으로 보면 원칙론적 발언에 가깝다.
그러나 발언의 시점과 수위를 보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 직후 국회 상임위원회가 움직였고, 범부처 국무회의에는 국세청과 외교부까지 포함됐다. 조사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에 권력의 메시지가 먼저 작동한 것이다. 법적 형식은 관여에 그쳤지만, 정치적 효과는 간여, 즉 지나친 간섭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러한 발언이 일회성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앞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사실상 항소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는가 하면, 통일교를 향해서는 해산 가능성까지 직접 거론하며 논란을 자초해 왔다.
대장동과 통일교, 그리고 쿠팡에 관한 이들 세 가지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법적 판단과 절차가 핵심인 사안이라는 점, 그리고 대통령의 발언이 먼저 나오면서 사법과 행정의 순서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쿠팡 사태도 앞선 두 가지 사례와 같은 경로를 밟았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기술적·법률적 문제는 곧바로 정치적 프레임으로 전환됐다. 특히 쿠팡의 미국 로비가 부각되며 사안은 외교·통상 문제로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도 기준점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의 미국 로비를 위한 비용 지출은 최근 5년간 약 1000만 달러,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00만 달러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구글과 아마존은 연간 1000만~2000만 달러 이상을 로비에 지출해 왔다. 매출 대비로 보더라도 쿠팡의 로비 비용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통상적으로 감내하는 수준에 속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통상·규제 문제가 플랫폼 기업들의 대표적인 로비 사안이라는 점이다.
데이터 보호 및 플랫폼 규제, 그리고 국경 간 데이터 이동 관련 현안들은 산업 체계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이다. 그럼에도 그간의 논의는 쿠팡의 미국 로비 활동에만 매몰되어 이를 사안의 본질처럼 다루었으며, 그 와중에 정작 개인정보 유출의 실체와 책임 규명이라는 핵심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국정원은 “지시는 없었고 협의만 있었다”고 공식 반박했다. 지시와 협의는 그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지시는 국가가 행위의 책임을 공유하는 직접적인 개입인 반면, 협의는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을 인지하는 차원의 관여이다.
국정원의 해명은 이 사안이 국가 안보 개입 사건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 긋기였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으며, 의혹을 해소하고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해명이었다.
이번 사태가 본질을 벗어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특정 기업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경한 메시지가 어떠한 정치적·행정적 연쇄 반응을 일으킬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실 확인에 앞서 메시지가 먼저 힘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일말의 가능성은 곧바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법치는 순서의 문제다.
조사와 판단이 먼저이고, 책임을 묻는 것은 그다음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이 순서를 반복해서 앞질러 갈 때, 정부는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갈등 증폭자로 비치게 된다. 대장동, 통일교, 그리고 쿠팡 사태는 모두 이러한 경고를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말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말의 절제다.
대통령의 발언은 비록 직접적인 지시가 아닐지라도 강력한 정책 신호로 기능한다. 그 막중한 무게를 감안할 때, 지금 필요한 조치는 소통 확대가 아니라 철저한 ‘입단속’이다.
권력의 언어가 한 박자 늦춰지고 자제될 때, 법과 절차는 비로소 본연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