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3선을 지낸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의 이력은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 보수 정당이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온 기회주의 엘리트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정치의 속도와 변동성은 늘 예측을 비웃는다. 이혜훈 장관 카드가 던져진 이후 일부에서는 “이재명이 큰 정치적 이득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사안을 단순한 인사 성공·실패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핵심을 비껴간다. 이는 이재명이 보수 정치의 취약한 지점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이혜훈 카드, 보수 정치의 취약한 지점 드러내
이혜훈이라는 인물은 한국 보수 정치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특정 유형의 상징이다. 좋은 학벌, 강남 지역구, 안정적인 엘리트 경력, 그리고 언제나 권력의 흐름을 민감하게 좇아온 정치적 태도. 서초 3선을 지낸 그의 이력은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 보수 정당이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온 기회주의 엘리트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인물이 여전히 ‘중도 확장’이나 ‘진영 통합’의 아이콘처럼 소비된다는 데 있다. 레거시 언론에서의 지식인적 이미지, 원내 권력자들과의 밀착, 그리고 정치적 위기 국면마다 등장하는 “확장성”이라는 수사는 이미 너무 익숙하다. 그러나 그 실질적 정치 내용은 언제나 공허했다.
이재명의 계산은 여기에 있다. 그는 보수 진영이 가장 방어에 취약한 인물, 가장 변명하기 어려운 유형을 정확히 겨냥했다.
상징 자본은 크지만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은 취약한 인물에게 ‘그럴듯한 간판’을 달아줌으로써, 보수 전체를 곤혹스러운 질문 앞에 세운 것이다.
이혜훈 카드는 고도의 정치적 연출
이는 인사 하나로 지지층에 효능감을 주고, 동시에 보수 진영 내부의 균열과 도덕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고도의 정치적 연출이다.
더 나아가 인사청문회 국면은 이혜훈 개인의 검증을 넘어, 보수 정치 전반에 대한 일종의 공개 재판장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행적, 정치적 태도, 권력 지향성은 좌우 진영 모두에게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진영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의 자기 부정과 굴욕의 재현이 될 공산이 크다.
이혜훈이 외연 확장의 상징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오독한 것이다. 그는 확장의 상징이 아니라, 보수가 왜 반복적으로 대중의 신뢰를 잃어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사례에 가깝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보수 우파는 불편한 질문을 피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적 엘리트 정치, 탄핵 국면에서 책임을 회피했던 정치 세력, 그리고 ‘그럴듯한 이미지’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관행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보수는 앞으로도 계속 상대 진영의 정치적 연출에 휘둘리는 노리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는 상징의 전쟁이지만, 상징은 결국 내용이 없을 때 가장 쉽게 무너진다. 이혜훈 카드는 이재명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수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자기 문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
대학교수·작가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조교수. 전 국방부 전략기획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