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주 세력의 목적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픽=한미일보]
정치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된다. 누군가는 백성을 위한 고귀한 행위로, 또 누군가는 권모술수와 자리다툼의 상징으로 본다. 하나의 단어지만 받아들이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현상을 언어의 ‘다의성’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것이 마치 의도된 것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가려는, 반민주·반국가의 ‘숨은 그림자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 사법, 관료, 재벌 등과 보이지 않게 결탁해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고, 그 공백을 자신들의 권력으로 채우려 한다.
여론은 조작될 수 있다
이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조작된 합의』에서 여론이 ‘선택된 선택지’로 조작될 수 있음을 경고했고, 많은 현대 미디어 학자들도 검색 결과의 배열만으로도 얼마든지 유권자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설계된’ 프레임 속에 살고 있다.
이들의 전략은 치밀하다. 정치를 혼탁하게 보이게 만들고, 싸움과 이권 다툼의 장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는 더러운 것이니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는다.
실제로 1948년 제헌국회 총선거 투표율은 95.5%였지만, 2024년 총선은 67%에 그쳤다. 76년 사이 약 30%p의 정치 참여율이 줄었으니, 이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순간, 소수의 강성 지지층만으로도 정국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게 된다.
정치를 권력 투쟁으로 읽는 것은 그들의 문법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주권자 철학의 발현이자,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정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대화는 소모적 논쟁으로 흐르지만, 주권자의 철학이 발현되는 장으로 본다면 비로소 건설적 토론과 조율이 가능해진다. 이는 공동체를 더욱 성숙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정치’는 우리 삶을 더럽히려는 세력과 맞서는 것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주권자다. 권리가 있다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매번 누군가가 차려준 정보의 밥상에만 의존한다면, 주체적 판단은 요원할 뿐이다.
주인의 철학을 위해서는 성찰과 공부가 따라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 국가와 사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스미디어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능동적으로 체득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나는 생각 없이 살아가겠다’는 바보 선언이자 주권을 포기하겠다는 노예 선언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역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치르는 가장 큰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라 역설했다.
정치는 더러워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더럽히려는 세력과 맞서게 할 공공의 자산이다. 우리가 정치에 등을 돌리는 순간, 숨은 그림자 세력은 조용히 환호하며 모든 것을 가져갈 것이다.
정치다큐 작가·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

◆ 민병곤 작가
현)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현) 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