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분쇄, 이라크 파병저지, 노무현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파병반대, 노동탄압 중지등을 요구하고 있다. 2003.11.01 [사진=연합뉴스]
요즘 한국 정치권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경제는 어렵다는데 왜 정권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을까.”
환율은 1500원에 접근했고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졌다. 기업 투자 심리 역시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그런데 정치 지형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경제 불안과 정치 안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보면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경제 상황이 악화될 때 정치권이 책임의 방향을 외부 변수로 돌리면 지지층은 오히려 결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경제 불안이 곧바로 정치 책임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다.
지금 한국 정치도 일정 부분 그런 국면에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에는 약점이 있다. 외부 충격이다.
외부 변수는 정치 프레임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치 앞에 등장하고 있는 외부 변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병 문제다.
미국은 이란과의 충돌 속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동맹국들에게 군사적 참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석유 수입국들에게 해상로 보호를 위한 군함 파견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한국 정부 역시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외교 현안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 해외 파병은 언제나 진영 내부 균열을 만들어 온 정치 변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에서 더 크게 폭발했다.
정부는 한미동맹을 이유로 파병을 결정했지만 시민단체와 지식인 그룹은 강하게 반발했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 “현실 외교”와 “반전 원칙”이 충돌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한미동맹과 에너지 안보를 고려할 때 미국 요청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원유 수입의 핵심 통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파병 결정은 좌파 진영 내부의 균열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반전 운동 세력과 시민단체, 일부 진보 지식인 그룹은 전쟁 개입 자체를 강하게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안을 오래 미룰 수 없다는 점이다.
전쟁 상황에서 군사 작전은 정치 일정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작전이 시작되면 동맹국들은 참여 여부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검토 중”이라는 상태를 몇 달씩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는 어느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참여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정치적 파장은 작지 않다.
참여할 경우 좌파 진영 내부에서 반전 논쟁이 폭발할 수 있다. 반대로 거부할 경우 한미동맹 문제와 안보 논쟁이 동시에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파병 문제는 이념·외교·안보가 동시에 얽힌 고폭성 정치 이슈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진짜 변수는 환율이 아닐지도 모른다.
환율은 경제를 흔들지만 전쟁은 정치를 흔든다. 그리고 전쟁은 경제보다 훨씬 빠르게 정치판을 뒤흔든다.
3월 한국 정치에서 터질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는 금융시장이 아니라 파병 결정일지도 모른다.
환율은 시장을 흔들지만, 파병은 진영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