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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스님 호국칼럼] 지혜(般若) 없는 평화는 굴종의 다른 이름
  • 응천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 등록 2026-03-19 03: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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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대사’(박서보 作)

부처님께서는 모든 고통의 근원을 어리석음(無明)이라 하셨다. 국가의 명운 또한 마찬가지다. 적의 칼날이 목전에 와서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는 것은 지혜로운 지도자의 태도가 아니다. 

 

호국의 핵심은 일이 터진 뒤에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이 닥치기 전 미연에 방지하는 ‘유비무환의 지혜에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430여 년 전,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임진왜란은 결코 갑작스러운 재앙이 아니었다. 이웃 나라의 불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도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며 안일한 평화론에 빠져있던 위정자들의 어리석음이 불러온 인재였다. 

 

지혜가 결여된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과 같으며, 준비 없는 안보는 적에게 던지는 항복 문서나 다름없다.

 

서산·사명대사가 칼을 든 이유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은 불살생(不殺生)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가사를 벗어 던지고 칼을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명을 죽여 만 명을 살리는 ‘살생유택’의 자비이며, 국토라는 터전이 없으면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서산대사는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국 사찰에 격문을 띄워 5000여 승병을 일으켰다. 

 

그의 제자 사명대사는 평양성 탈환 작전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종전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지어 포로 3500여 명을 데리고 귀환하는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분들은 기도로만 나라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무기를 들고, 전략을 짜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실천적 호국을 몸소 보여주셨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이분들이 흘린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지엄한 교훈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인왕경’의 유비무환

 

호국종이 받드는 ‘인왕경’에서 부처님은 국가 수호의 방편으로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를 수지(受持)할 것을 권하셨다. 

 

여기서 지혜란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경전은 국가에 재난이 닥치기 전 나타나는 징조들을 경고하며, 지도자가 깨어 있는 정신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을 보살피라고 가르친다.

 

“지혜로운 왕은 나라가 평안할 때 환란을 잊지 않으며, 강성할 때 쇠락을 대비한다. 안보는 성벽의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깨어 있는 의식과 백성의 하나 된 마음에 달려 있다.”-‘인왕경’의 가르침 중

 

유비무환은 단순한 군사적 대비를 넘어선다. 그것은 적의 위협을 가감 없이 직시하는 ‘정견(正見)’이며,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방의 정진(精進)이다. 

 

“우리 세대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가장 무서운 마구니(魔軍)다.

 

안보가 무너진 땅에는 연꽃도 피지 않는다

 

필자는 매일 아침 목탁을 두드리며 서원한다. 이 땅의 청년들이 더 이상 전장에서 피 흘리지 않기를, 그리하여 이 강산이 진정한 평화의 정토가 되기를 말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강력한 힘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억제력이 없는 평화 구걸은 비굴한 굴종을 낳고, 결국에는 더 큰 희생을 초래한다.

 

기도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이고, 안보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서산·사명대사가 보여주신 호국 정신의 핵심은 ‘미리 준비함’에 있었다. 승병들은 평소에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했기에 국난의 현장에서 가장 용맹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군(軍)은 강한 훈련으로 대비하고, 위정자는 안보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으며, 국민은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혜의 칼로 어리석은 평화론을 베라

 

나약한 평화는 악(惡)을 부르고, 강력한 대비는 화(禍)를 쫓는다. 대종사 응천이 이 자리를 빌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지혜(般若)가 전제되지 않은 안보 논의는 모두 허상이다.” 

 

과거의 비극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임진왜란의 참혹함을 겪고도 구한말의 치욕을 반복했던 우리 역사를 가슴 깊이 참회해야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룸비니서가에서 피어날 지혜의 글들이 국민의 안보의식을 깨우는 죽비가 되길 바란다.

 

나라가 평화로울 때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높은 차원의 수행이자 호국이다. 안보가 튼튼한 나라, 유비무환의 지혜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이야말로 부처님이 미소 짓는 진정한 불국토가 될 것이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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