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모든 나라의 석유 수송을 지켜줄 의무는 없다”는 발언은 기존 국제안보 구조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드러낸 신호였다. 미국이 해상 치안 유지자로서 부담을 떠안고 전 세계가 혜택을 누리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의미다.
각자도생 조치는 파병 지체에 대한 반작용인가?
미국은 오래전부터 동맹국들에게 “공동의 이익에는 공동의 책임”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여러 국가는 정치적 부담과 국내 여론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며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미국이 이 구조에 피로감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미국이 그 안전을 위해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해온 반면, 정작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국가는 중국·인도·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미국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배경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책임 재배분을 넘어 책임 회피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동맹은 상호성에 기반해야 하며, 한쪽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한국 역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걸맞은 에너지 안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보호는 권리가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점도 강조된다.
각자도생 조치는 인도·태평양에 집중하는 신호탄인가?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감시 축소는 단순한 전술 조정이 아니라, 중동에서 손을 떼고 인도태평양 전선에 집중하려는 전략적 전환의 일환이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시리아 잔류 병력 감축, 중동 주둔 전력 축소 등 다중 전선 부담을 줄이는 조치를 진행해 왔다. 반면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전력 재배치와 동맹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모든 나라의 석유 수송을 지켜줄 의무는 없다”는 발언은 이러한 기조를 상징한다. 미국은 중동의 안보 부담을 지역 국가와 동맹국에 더 많이 전가하며, 전략적 중심축을 한반도와 서태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사드 2문이 돌아온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논쟁적이며, 국제정세는 단순한 흑백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떠안던 시대가 끝나고, 각국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행동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이 변화는 부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각자도생 조치는 동맹의 경고인가?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각자도생 조치는 성숙한 동맹을 회복하라는 경고로 읽어야 한다. 미국이 모든 위험을 대신 떠안는 구조는 동맹이 아니라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에 가깝고, 이번 조치는 그 비정상성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임에도 에너지 수송로 보호를 미국에 의존해 왔고, 파병 논의가 정치적 소모전으로 반복되며 책임 회피의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파병 논란이 아니라 국제 안보의 ‘규칙 자체가 바뀐 사건’이다. 트럼프의 각자도생(各自圖生) 원칙 아래 해협 통과세가 새로운 글로벌 규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일본은 이미 그 규칙에 맞춰 움직였다. 한국도 더 이상 예외가 될 수 없는데 꼼수를 부리면 관세, 환율, 금융, 무역과 관련한 기존의 모든 체계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알렉산더의 검이 트럼프의 손에 있는 형국, 동북아의 판이 흔들리는 지금, 가장 위험한 태도는 침묵이다. 외교에서 모호함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결정적 순간에 비어 있는 메시지는 공백이 되고, 공백은 신뢰의 약화로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망이 아니라 한미동맹 회복이며, 회복하지 않으면 한국은 주변부로 밀려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각자도생 조치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의 재조정이며, 동맹국들이 더 이상 관망자로 남을 수 없다는 경고로 읽어야 한다. 다중 전선의 조정과 인도·태평양 중심축은 한국에게도 구조적 변화를 요구한다. 핵무장 강대국에 둘러싸인 현실에서 전작권·자주국방 논쟁은 감정이 아니라 냉혹한 역량의 문제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계속성을 유지하려면 안보를 정치의 도구로 삼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보마저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업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