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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민족문학에서 정치문학으로: 1974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작가회의 계보의 문제
  • 松山 시인
  • 등록 2026-03-22 19: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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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된 계보: 문학은 언제 '정치'에서 독립할 것인가
  • 1974년에 멈춘 시계, 2026년의 문학을 가두다

1989년 3월 판문점 남북작가회담 예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들. 이들은 도중에 경찰에 연행되었다. 

한국 문단에는 하나의 길게 이어진 계보가 있다. 출발점은 1974년 11월 18일이다. 유신체제 한복판에서 ‘문학인 101인 선언’과 함께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그 시작이다. 

 

이 조직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와 표현 억압에 반대하며 등장했다. 참여 인물로는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평론가 백낙청 등이 있었다. 이들은 분명 당시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체제에서 문학이 저항의 통로가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 조직은 처음부터 문학을 자율적 창작 영역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문학은 현실 개입의 도구였다. 이 출발점이 이후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된다.

 

2007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작가회의’로


1980년 3월, 계엄령 확대 직전 시점에 잡지 「실천문학」이 창간된다. 이 잡지는 이름 그대로 문학을 ‘실천’의 수단으로 규정했다. 이어 1987년 6월항쟁 이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재편된다. 

 

여기서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문학 이론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었다. 이후 반독재, 반외세, 통일, 민족 해방이라는 거대 담론이 문학의 기준으로 설정된다.

 

이 시점에서 문학의 성격은 명확히 바뀐다. 개인의 내면이나 인간의 복잡한 경험을 다루는 작업이 아니라, 집단의 목표를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작품은 탐구가 아니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초, 여기에서 내부 갈등이 발생한다. 그 결과 실천문학 계열이 분화되며 실천문학작가회의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 분화는 방향의 변화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노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느냐, 조정하느냐의 차이에 불과했다. 문학을 정치와 결합시키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계보는 이후 다시 정리된다. 200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명칭을 바꿔 한국작가회의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변화처럼 보인다. ‘민족’이라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보다 중립적인 이미지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실제 활동을 보면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작가회의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치 현안에 대해 집단 입장을 표명해 왔다. 특정 사례를 보자.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단체는 계엄 무효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2025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를 향해 “즉각 파면”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다. 문학 단체가 반복적으로 현실 정치의 전면에 개입하고 있다는 명확한 사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장의 내용이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문학 단체가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입장을 내고, 이를 반복하면, 그 조직은 더 이상 순수한 문학 단체로 보기 어렵다. 정치 조직과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구조는 문단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계보가 장기간 중심을 차지하면, 그 방향이 사실상의 기준이 된다. 민족문학, 실천문학, 정치 참여 문학이 ‘정상’으로 간주되고, 다른 흐름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자유주의적 관점, 시장경제를 긍정하는 시각, 국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서술, 혹은 단순히 비정치적 문학을 지향하는 작업까지도 모두 주변화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경쟁이 아니다. 구조적 편향이다.

 

질문이 결론보다 앞서는 구조로 돌아가야


또 하나의 문제는 문학의 형식 자체가 약화된다는 점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서면 작품은 쉽게 도식화된다. 인물은 입장의 대변인이 되고, 사건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변한다. 복잡한 인간은 사라지고 단순한 구도가 남는다. 문학이 아니라 선언문에 가까운 텍스트가 반복된다.

 

이 현상은 1980년대 이후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문학이 현실 참여에 몰두하면서 형식적 실험과 언어적 긴장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계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분화는 있었지만 방향은 유지되었다.

 

결국 이 흐름은 하나의 공식을 만든다. 문학은 정치의 도구라는 공식이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시작된 이 공식은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1990년대 실천문학 계열, 2007년 한국작가회의로 이어지며 유지되었다.

 

문제는 이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는 1970년대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문학이 반드시 정치적 실천의 도구로 기능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고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보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시국 성명, 정치 참여, 집단 입장 표명. 이 반복은 문학을 점점 좁은 영역으로 몰아넣는다.

 

문학은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선이 충돌하고 공존할 때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특정 계보가 중심을 장악한 상태에서는 그 다양성이 충분히 보장되기 어렵다.

 

이제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문학을 다시 문학으로 돌려놓는 기준이다. 작품이 입장보다 앞서고, 인간이 구호보다 앞서며, 질문이 결론보다 앞서는 구조 말이다.

 

지금까지의 계보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래까지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개칭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이다. 문학을 다시 자유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방향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역사심리학 해설서 ‘신화가 된 조선’(2026)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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