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정치평의회 고위 위원인 와피크 사파가 4월13일 베이루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P]
이란의 대리 세력은 가련한 ‘약자 연합’이 아니다. 수십 년간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길러 온 무장 네트워크이며, 제각기 다른 토착 불만을 흡수해 반미·반이스라엘 전선으로 엮어낸 정치군사 복합체다.
따라서 중동을 읽을 때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이 ‘미국·이스라엘=惡’ ‘반미·반이스라엘=善’ 도식이다. 헤즈볼라·하마스·후티·이라크 親이란 민병대에 공통된 핵심도 뚜렷하다.
자신들의 모든 행위에 ‘저항’의 언어를 씌워 정의를 외치고, 그 명분 아래 도덕적 면책을 누려 왔다는 점이다. 약자의 외피를 두를 뿐 실제 작동 방식은 선전·복지·종파·무장·인질·선거를 한데 묶어 쓰는 권력기계에 가깝다.
다양한 불만, 하나의 방식
헤즈볼라는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진압을 내세운 이스라엘의 레바논 진입 직후, 레바논 내전 속에서 IRGC가 키운 조직이다. 진작부터 단순 민병대가 아니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당·복지조직·정보망과 독자적 무력을 함께 굴리며 ‘국가 안의 국가’가 됐다.
이스라엘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며 세를 불렸고, 2024년 나스랄라 제거와 휴전 뒤에도 레바논은 헤즈볼라 무장해제 문제를 둘러싼 몸살을 앓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적대를 위해 레바논 국가 자체를 인질로 잡아 온 측면이 강하다.
하마스 역시 ‘약자의 저항’이라는 한 줄로 정리할 수 없다. 1987년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 와중에 무슬림형제단 계열로 출발했고, 2007년 가자지구를 장악한 뒤 팔레스타인 대의의 대표를 자처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지 정치의 분열을 고착시키고, 민간 공간과 무장투쟁을 뒤섞으며 장기적 타협 가능성을 더 좁혀 왔다. 하마스를 약자 저항의 상징으로만 포장하는 순간, 그 이슬람 근본주의 성격과 이란 축 편입, 자기 사회에 끼친 폐해가 함께 지워진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 고통을 권력화해 온 하마스의 책임은 자꾸 뒤로 밀려난다.
후티는 더 복합적이다. 처음부터 이란이 만든 조직은 아니었지만, 내전이 깊어질수록 이란이 먼저 손을 뻗어 무기·훈련·기술 지원을 밀어 넣었고, 끝내 홍해를 흔드는 대리전 자산으로 키워 냈다.
하마스의 2023년 10.7테러로 촉발된 전쟁 이후 상선을 100차례 넘게 공격해 두 척을 침몰시키고 한 척을 나포했으며 최소 선원 4명을 숨지게 한 조직이다. 이들의 ‘가자 연대’ 미사여구 너머엔 이란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이라크의 親이란 민병대는 더 까다롭다. ‘인민동원군’ 전체를 이란 하청조직이라 부르긴 지나치지만, 카타이브 헤즈볼라 같은 핵심 파벌이 IRGC와 밀착해 온 것은 분명하다. 反ISIS 전쟁의 영광과 국가급여, 합법적 외피를 얻은 뒤에도 정규군 지휘계통 밖에서 움직이며 이라크를 안에서부터 좀먹어 왔다는 비판이 있다. 국가 월급으로 총을 들고 전략은 이란과 맞추는 식의 이중성이 굳어졌다. 이라크 국가의 외형은 남아 있으나 실질 주권이 안에서부터 잠식되는 구조의 중심에 친이란 민병대가 있다.
편파적 도덕주의
다시 말해, 이들 이란의 대리 세력은 NGO가 아니다. 선전·복지·종파·선거·인질·미사일·드론을 한 손에 묶어 쓰는 무장 정치세력이다. ‘강자에게 맞선다’ 한 가지로 다 설명될 집단이 아닌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동에 완전히 새로운 문법의 적용을 시도한 인물이 트럼프다. 미국과 유럽 주류가 레바논·가자·예멘·이라크 문제를 따로 떼어 봉합과 관리에 치중했다면, 트럼프 1기 때의 솔레이마니 제거와 아브라함협정은 이란 신정체제, 대리 세력, 아랍-이스라엘 재편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면서 나온 구체적 행동이다. 관리 대신 해체 압박으로, 임시 봉합보다 구조 재편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아브라함협정의 연장선에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정상화 협상도 상당히 진전돼 있었다. 10·7테러가 그 흐름을 저지하려는 무력행사였다는 정황과 해석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중동 국면을 단순한 ‘이스라엘 vs 저항세력’ 구도로 읽는 순간 판 전체를 놓친다.
헤즈볼라·후티·이라크 親이란 민병대는 레바논·홍해·이라크·호르무즈를 잇는 이란의 분산형 압박 장치임을 인식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연대’ 같은 감상적 언어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해상교통로와 보험료, 에너지 흐름, 미군 전개를 함께 흔드는 지정학 문제로 관찰해야 한다. 따로따로 보면 사건이지만 한 축으로 묶어 보면 역사와 대안 전략이 보인다.
트럼프의 새판짜기
결국 현 중동 국면의 더 큰 축은 트럼프의 새판짜기, 그리고 그 문맥 속의 중국 견제다. 중국은 2025년 기준 이란의 해상 수송 원유 80% 이상을 사들였고, 이는 중국 해상 원유 수입의 약 13.4%였다.
이란 대리 세력 끊어내기와 해상 레버리지 무력화란 이란의 對이스라엘·미국 파괴 수단들을 제거하는 일인 동시에, 중국이 제재 틈새에서 누려 온 값싼 원유와 중동 불안정의 반사이익을 조준한 일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최근 사실상 중국·러시아를 겨냥해 對이란 무기 공급국에 50% 관세 부과를 거론한 것또한 중동 내 해당 전선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즉 중동 전선은 지역분쟁 차원을 넘어 미·중 대결의 에너지·해상 루트와 맞물린다.
문명의 회복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이 뮌헨안보회의에서 던진 메시지도 같은 줄기다. 밴스는 2025년 회의에서 유럽에게 러시아나 중국보다 더 큰 위협이 본연의 내부 가치 후퇴, 표현의 자유 억압, 통제불능 이민이라고 질타했다. 2026년 회의엔 루비오가 참석해 미국과 유럽이 ‘같은 위대하고 고귀한 문명의 상속자’라고 호소했다.
핵심은 하나다. 자기 문명의 토대와 정체성을 부끄러워하는 서유럽 엘리트가 이슬람주의 대리전의 성격도, 중동이 유럽 질서와 직결되는 이유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非기독교 反기독교적 세속주의는 문화 논쟁을 넘어 안보 현실을 읽는 감각까지 흐려 왔다. 중동을 오독하는 눈이 결국 유럽 자신의 위기까지 키워 왔다는 뜻이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