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경제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란 전쟁의 관전 포인트는 전선의 이동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전쟁을 통해 동맹을 어떻게 평가했느냐, 그리고 그 평가가 전쟁 이후 어떤 요구로 돌아오느냐다.
한동안 전면에 잘 보이지 않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다시 등장해 관세 복원과 미중 협상 의제를 꺼내 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베선트는 4월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행사에서 대법원 판단으로 제동이 걸린 기존 관세를 무역법 301조 조사 등을 통해 7월 초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날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글로벌 파트너”라고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관계는 안정적이며 5월 중순 베이징 방문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쏠렸던 관심을 다시 무역과 미중 협상으로 돌리는 장면이었다.
이 발언은 돌출된 한마디가 아니었다. 베선트는 이미 3월4일 CNBC 인터뷰에서 무역법 122조에 따른 10% 임시 글로벌 관세를 15%로 올릴 수 있다고 밝히며, 150일 동안 301조와 232조 절차를 진행해 기존 관세 체계를 복원하겠다는 이른바 ‘5개월 가교’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4월14일 발언은 새 구상이라기보다, 전쟁 국면이 가라앉자, 그 로드맵을 다시 꺼내 든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따라서 핵심은 베선트의 발언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통해 본 것이 중동의 불안만이 아니라 “누가 미국 편에 얼마나 서 주었고, 누가 비용을 얼마나 나눌 준비가 돼 있느냐”는 문제였다면, 전쟁 이후 미국의 압박은 군사 문제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관세와 통상, 공급망과 투자, 방위비와 에너지까지 하나의 거래 틀로 다시 묶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트럼프가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 문제를 관세 협상과 함께 다루는 이른바 “원스톱 쇼핑” 구상을 공개적으로 거론해 온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시야를 한국으로 좁히면 질문은 더 구체적이 된다.
트럼프의 이런 동맹 인식이 한국에는 어떤 형태의 청구서로 돌아올 것인가.
사실 첫 장은 이미 도착해 있다. 한국 국회는 지난 3월 미국 전략산업 2000억 달러, 조선 협력 1500억 달러 등 총 3500억 달러 투자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과의 기존 합의를 국내 제도로 뒷받침하는 성격이지만, 그 배경에는 트럼프가 이행 지연 시 한국산에 더 높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압박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의 새 301조 산업 과잉설비 조사 대상에도 포함돼 있다.
이란 전쟁은 여기에 에너지 계산서까지 겹치게 만들었다. 한국 정부는 4월15일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경로를 통해 원유 2억7300만 배럴과 나프타 210만 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 61%, 나프타 수입 54%는 호르무즈를 통과했다. 정부가 대체 물량을 서둘러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쟁이 멎더라도 한국이 이미 공급망과 물류, 에너지 조달 비용의 재계산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란 전쟁의 뒤처리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휴전의 문구보다 청구서의 방향이다.
베선트가 다시 전면에 나와 관세 복원과 중국 압박, 미중 정상외교 가능성을 한꺼번에 꺼내 든 것은 우연한 장면으로 보기 어렵다.
전쟁 국면이 소강으로 접어들자,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 축이 다시 무역과 비용 분담 협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한국은 단일 항목 압박이 아니라, 관세와 대미 투자, 조선 협력, 방위비, 에너지 조달을 한 묶음으로 계산하는 복합 청구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중 확인하려 했던 것이 동맹의 충성심이 아니라 동맹의 지불 능력과 협조 의지였다면, 한국은 이제 “전쟁이 끝났는가”보다 “미국이 다음 계산서를 어떻게 써서 보내올 것인가”를 먼저 봐야 한다.
전쟁은 멎을지 모르지만, 거래는 다시 시작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