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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이슈] 헝가리 총선 결과의 국제정치학… 오르반 패배로 폴란드가 챙길 반사이익
  • 임명신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 등록 2026-04-16 23: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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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헝가리 총선에서 빅토르 오르반 정부가 패배했다. 

 

16년 체제의 종식이라는 사실보다, 트럼프 진영이 유럽연합 내부에 두고 있던 상징적 전초기지가 흔들렸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이번 선거에서 페테르 머저르의 티서(존중과 자유)당은 199석 가운데 138석, 곧 3분의 2 개헌선을 확보했다.

 

다만 이번 패배를 헝가리라는 국가의 근본적 방향전환으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머저르 자체가 오르반 진영 내부에서 갈라져 나온 중도우파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복원을 말하면서도 강경한 이민통제 기조 유지를 약속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EU가입 신속 추진엔 반대하며 국민투표를 거론했고, 러시아와도 당분간 실용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마디로, 이번 총선 결과를 EU 주류 엘리트가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글로벌리즘, 非기독교 反기독교적 리버럴리즘의 승리로 보긴 이르다는 뜻이다. 오르반이 헌법·제도·상징 속에 독점적으로 새겨 넣은 ‘헝가리식 보수국가 모델’의 대표자가 바뀐 사건, 오르반식 통치 방식의 실효성에 회의적 판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오르반은 왜 오래 강했나

 

오르반은 1989년 소련군 철수를 공개 요구하며 떠오른 반공청년 아이콘이었다. 1998년 서른다섯살 때 총리가 됐고 2010년 재집권 뒤로는 헝가리 우파를 사실상 하나의 장기 집권 블록으로 묶어냈다. 

 

2015년 난민 위기 뒤엔 국경통제, 기독교 문명 수호, 가족정책과 출산 장려를 내세워 실행력 가진 보수의 상징이 됐다. 미국 보수진영이 부다페스트를 찾아 그의 정치 실험을 관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오르반을 동지로 여긴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오르반의 탁월함으로, 헝가리인의 상처받은 국민감정, 공산권 붕괴 이후의 피로, EU 관료주의에 대한 반감, 이민과 문화전쟁을 둘러싼 불안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서유럽보다 훨씬 앞서 ‘국경 없는 인도주의’의 한계를 꼬집었고, 기독교와 가족을 앞세운 보수적 가치정치도 선명했다. EU의 압박에 꿋꿋한 모습 또한 지지층 눈에는 ‘작은 나라 지도자의 기개’로 비쳤다. 그렇게 오르반은 유럽 보수의 스타가 됐고, 트럼프주의의 유럽형 선행모델처럼 인식됐다.

 

강점이 약점으로 바뀐 순간

 

그런데 점차 그의 현실감각이 통치 매뉴얼로 굳고, 주권 수호의 기치가 경제 부진 및 부패 피로감을 덮는 정치적 방패로 비판받게 된다. 국경의 의미, 무제한 이민의 비용, 유럽연합 관료주의, 글로벌리즘 엘리트 정치의 공허함을 선명하게 짚어내던 그의 언어가 장기집권 체제의 연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패배 원인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자. 첫째, 경제 실패. 오르반은 EU 비판엔 날카로웠으나 EU 의존을 대체할 성장 모델을 창출하진 못했다. 헝가리 경제는 여전히 유럽 자금과 시장, 특히 제조업 공급망에 깊이 묶여 있었고, EU와의 충돌 속에 170~180억 유로 규모의 자금이 얼어붙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헝가리 성장률을 2025년 0.4%, 2026년 약 2%로 봤고, OECD는 최근 2년간 투자 감소 폭이 약 20%에 달했다고 짚었다. 고물가와 큰 재정적자, 정책 예측 가능성 약화까지 겹치며 ‘주권’의 언어는 끝내 민생 성적표로 번역되지 못했다. 

 

시장이 오르반 패배 직후 헝가리 화폐(포린트) 강세와 자산가격 상승으로 반응한 것 역시 실용적 기대감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둘째, 권력구조 노화. 장기집권 체제란 갈수록 내부 피드백을 잃기 마련이다. 사법·언론·행정·정당 구조를 오래 장악할수록 정권은 바깥의 비판뿐 아니라 안쪽의 경고 신호에도 둔감해진다. 오르반 체제는 민주주의 후퇴 논란을 받으면서 국내적으로 피로감이 누적됐다. 

 

셋째, 도전자의 성격. 이번 선거의 승자 머저르는 전형적 리버럴 야권 인사가 아니라 오르반 진영 출신이다. 그래서 오르반의 반엘리트·반EU 서사 독점권을 안쪽에서 무너뜨릴 수 있었다. 

 

넷째, 세대교체. 약 80%라는 기록적인 투표율 속에 치러진 선거였지만 청년층에게 유독 버림받은 결과가 두드러졌다. 18~29세에서 피데스당 지지율 8%가 상징적이다. 과거엔 체제전환의 영웅이었지만, 젊은 세대 눈엔 기성 권력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장기 집권엔 권태와 안정감이 공존하는 법인데, 이제 권태가 안정의 이익을 압도하게 된 셈이다.

 

바르샤바가 챙길 반사이익

 

오르반 시대의 헝가리는 EU와 우크라이나를 흔드는 ‘예외 국가’였다. 그 축이 무너지면 지역정치의 중심이 더 자연스럽게 폴란드로 쏠린다. 

 

폴란드는 안보에선 러시아 견제의 최전선 이미지를 굳혔다. 트럼프가 2019년 안제이 두다와 백악관에서 폴란드에 미군 1000명 추가 배치를 약속하고 현지에서 이를 ‘트럼프 요새’로 부르려 했을 정도이며, 작년 9월 신임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이런 신뢰관계를 재확인했다. 

 

경제에선 헝가리가 2% 안팎이 기대되는 반면, 폴란드는 EU 자금 흡수를 성장으로 연결해 2026년 3.5% 성장이 전망된다. 헝가리 국민의 선택이 트럼프의 유럽 내 대표적 우군의 이탈로 받아들여진다면 향후 대가가 따를 수 있다. 헝가리 행보에 따라 폴란드는 미국의 신뢰를 높이며 안보와 성장 면에서 반사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크다. 

 

헝가리 유권자들 또한 누가 실익을 가져가는지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반미 정서가 조장될수록 미국에게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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