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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 시사읽기] 공직자 뽑기, 아테네처럼 순환하고 로마처럼 검증하라
  • 松山 작가
  • 등록 2026-04-22 18: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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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식 ‘추첨’… 정치 참여의 문 넓혀
  • 로마식 ‘선거’… 경력과 활동 이력 중요시

‘페리클레스의 추도사’(1853) 필립 폰 폴츠 작품. 페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정치가이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앞두고 시민 앞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연설을 하고 있다.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공직을 맡을 수 있어야”


아테네는 공직자를 제비로 뽑았고, 로마에서는 선거로 뽑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는 공직 상당수가 추첨으로 채워졌다. 클레로테리온이라는 돌판 장치에 이름표를 꽂고, 구슬을 떨어뜨려 순서를 정했다. 행정관, 재판 배심원 등 많은 자리가 이 방식으로 채워졌다.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선거를 하면 같은 사람이 계속 올라오는 일이 반복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설을 잘하는 사람, 재산이 있는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유리했다. 그 결과가 이어지면 권력은 일부에 머물게 된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 점을 경계했다.

 

그래서 경쟁 대신 순환을 택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공직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 맡는 상황도 받아들였다. 대신 특정 인물이 오래 자리를 지키는 일은 막았다.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시민이 돌아가며 맡는 공적 역할로 이해됐다.

 

로마 “국가 운영에는 경험과 판단 필요”


로마 공화정은 다른 길을 걸었다.

 

집정관, 법무관, 재무관 같은 핵심 공직은 모두 선거를 통해 결정됐다. 시민 집회에서 투표가 이뤄졌고, 후보자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연설과 활동을 이어갔다.

 

여기에는 다른 판단이 깔려 있었다. 국가 운영에는 경험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군대를 지휘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리를 무작위로 맡길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경력과 명성, 활동 이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방식에서는 특정 계층이 앞에 서기 쉬웠다. 파트리키 같은 유력 가문과 정치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평민도 점차 진입했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같은 자리를 두고 여러 인물이 겨뤘고, 결과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갈렸다.

 

이 두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현대 국가는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모두 투표로 결정된다. 이 점에서는 로마와 닮아 있다. 동시에 배심원 제도나 시민 참여 방식에서는 아테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이 공적 역할을 맡는다.

 

대한민국도 이 두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을 공화국으로 규정한다. 실제 운영 역시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치 권력은 대표를 뽑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경력, 정책, 평판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분명히 로마 쪽에 가깝다.

 

그런데 교육에서는 다른 모습이 강조된다.

 

학교에서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참여, 민회 같은 내용만 접하면 정치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 제도는 선출 중심인데, 머릿속에서는 누구나 바로 맡을 수 있는 참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의 어긋남이 생긴다.

 

참여는 아테네처럼, 정치인 검증은 로마처럼 


선거가 왜 필요한지,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무엇을 따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참여 자체를 앞세운다. 반대로 대표를 맡은 사람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권력 분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

 

공화국을 운영한다면 그에 맞는 교육과 이해가 필요하다.

 

선거는 단순한 인기투표가 아니다. 정책 판단, 행정 능력, 공적 책임을 맡길 수 있는지를 따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권력이 구성된다. 동시에 권력은 분산되고,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된다.

 

물론 아테네의 경험은 여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을 경계하는 태도, 시민이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중요하다.

 

정치에 문외한인 내가 대한민국에 남기고 싶은 한마디는 이것이다. 참여는 아테네처럼 넓히되, 권력은 로마처럼 검증된 손에 맡겨야 한다. 이 균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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