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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23 15: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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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의 문이 먼저 흔들릴 때 남북정치의 문도 함께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의 '2국가론'이 발표된 후 나온 김정일 전집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내용 전체가 삭제됐다. [사진=연합뉴스]개헌 논의와 남북정상회담은 한국 정치에서 묘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다. 

 

정상회담이 먼저 열리고 그 결과로 개헌 논의가 뒤따른 것이 아니라, 개헌 논의가 먼저 정치권을 흔든 뒤 남북정상회담 국면이 전개되거나, 적어도 남북관계의 큰 정치적 합의가 그 뒤를 잇는 흐름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시간 순서로 놓고 보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쳐 지금 이재명 정부까지 이 패턴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가 먼저 문을 열었다. 김대중 정부는 개헌의 문을 먼저 두드리지는 않았다. 4억5000만 달러를 불법으로 북에 송금한 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으로 곧장 갔다. 

 

그런데 그 6·15 공동선언 2항에는 이미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 사이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형식은 화해와 협력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남북관계의 성격을 다시 규정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먼저 국내 질서 위에 올라온 셈이었다. 

 

훗날 헌법 질서와 긴장할 수 있는 남북 병존의 언어가 이때 이미 제도권 정치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개헌 논의가 먼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그 뒤 3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방북이 이어졌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를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조율 또는 탐색 신호로 해석했다. 초기 구상은 곧바로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그해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시간표만 놓고 보면 개헌 논의가 먼저 정치권을 흔들었고, 정상회담은 그 뒤에 열렸다.

 

문재인 정부도 비슷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26일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했다. 

 

제1차 2018 남북정상회담인 판문점 정상회담은 그 한 달 뒤인 4월27일 열렸다. 

 

이 역시 정상회담이 개헌을 부른 것이 아니라, 개헌의 문이 먼저 열리고 그 뒤 남북정상정치의 공간이 넓어진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적어도 연표상으로는 그렇다.

 

이런 흐름이 반복되는 이유는 남북정상회담이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한반도 질서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관한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은 이미 분명한 방향을 정해 두고 있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명시한다. 

 

다시 말해 통일의 주체는 대한민국이고, 통일의 질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뜻이다. 

 

이 헌법 구조 아래에서는 남북을 영구한 별도 국가로 고착시키거나 자유민주적 통일을 대체하는 병존 질서를 최종 상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선언이 된다. 

 

김정은은 2024년 1월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이어 북한은 2024년 10월 헌법을 개정해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순한 대남 강경 발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붙들고 있는 국가 정통성, 영토성, 통일 원리를 한꺼번에 흔드는 선언이다. 

 

북한이 먼저 남북을 두 국가로 선행 규정해 버리면, 한국 내부에서는 결국 “그렇다면 헌법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북관계를 겨냥한 말이면서 동시에 한국 헌법 질서를 압박하는 정치적 언어인 셈이다.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의 상관관계는 여기서 더 선명해진다. 

 

개헌은 단순한 제도 보완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금기를 흔드는 일이다. 

 

한 번 헌법의 문이 열리면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가벼워진다. 처음에는 국내 의제가 앞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이 손댈 수 있는 대상이라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 순간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관계 재설정도 단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체제 개헌 현실화 또는 헌법 재해석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다시 개헌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게 보기 어렵다. 

 

이번 개헌안 전면에도 계엄 통제 강화, 헌법 전문 정비, 지역균형발전, 삶의 질과 기회 보장 등 여러 국내 의제가 함께 놓여 있다.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국내 현안의 정리처럼 보이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조항보다 ‘개헌의 문’ 자체가 열린다는 점이다. 

 

첫 개헌은 늘 다음 개헌의 문턱을 낮추고, 한 번 흔들린 헌법의 금기는 이후 더 큰 쟁점을 담아낼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개헌안에는 국가가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균형발전을 촉진해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까지 담겼다.

 

개헌이 곧바로 남북정상회담을 부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개헌 대신 다른 방식으로 문을 열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개헌 논의가 먼저 정치권을 흔든 뒤 남북정상회담 국면이 뒤따랐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가 다시 개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시간표를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한국 정치의 경험은 헌법의 금기가 먼저 흔들릴 때 남북정치의 공간도 함께 넓어졌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은 서로 무관한 두 사건이 아니다. 개헌은 제도의 문을 여는 일이고, 남북정상회담은 질서의 문을 여는 일이다. 

 

한국 정치의 시간표는 대체로 앞문이 먼저 열리고 뒷문이 따라 열렸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지금의 개헌 논의도 국내 정치의 한 장면으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그것은 곧 다가올 남북정상회담의 예고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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