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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막고 손발 묶는 국민투표법’… 손 놓은 제도권
  • 김영 기자
  • 등록 2026-05-09 13: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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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헌 반대 집회 제한 논란에도 정당 차원 법적 대응 공백
  • 공고 뒤 집회·서명·통신 제한… 국민토론권 위축 현실화
  • 박주현 변호사 헌법소원·자유대한호국단 행정소송 제기

 

개정 국민투표법을 둘러싼 논란이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대로 넘어가고 있다. 쟁점은 단순히 국민투표권 자체가 아니다. 헌법개정안에 대해 국민이 말하고, 모이고, 서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국민토론권’이 실제로 제한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개헌안의 국회 처리 결과와 별개로, 이미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헌법개정안 공고 이후 개헌에 대한 집회와 시위, 서명과 통신 활동을 제한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됐고, 실제 집회 신고 제한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런데도 제도권은 말로만 반발했을 뿐, 국민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적 대응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입은 열었지만 헌재의 문은 뒤늦게야 두드려진 셈이다.

 

말할 권리의 문제

 

현행 국민투표법은 2026년 3월 6일부터 시행됐다. 국민투표법 제22조는 국민투표운동을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찬성 또는 반대하게 하거나 여러 가지 사항 중 하나를 지지하게 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동시에 국민투표 대상 사항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과 의사표시는 국민투표운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제37조와 제114조다. 제37조는 5명을 초과한 인원이 무리를 지어 행진하거나 연달아 소리 지르는 행위, 호별 방문, 서명 또는 날인 받기, 전기통신 방법 이용, 집회 개최, 확성장치나 자동차 사용, 녹음기·녹화기 사용 등을 제한한다. 제114조는 이를 위반한 경우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투표법이 막아야 할 것은 허위사실 유포, 금품 제공, 강요, 폭력적 동원이다. 그러나 현행 조항은 국민이 헌법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확산하는 핵심 수단까지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투표권은 보장한다고 하면서 투표 전에 말하고 모이고 설득할 권리를 위축시킨다면, 국민투표는 주권자의 숙의 절차가 아니라 투표일 하루의 선택 절차로 축소될 수 있다.

 

공고 뒤 시작된 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은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선관위 국민투표법 운용기준은 투표운동 성립 시기를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때로 본다. 대통령이 헌법 제129조에 따라 헌법개정안을 공고하면, 그때부터 국민투표운동 제한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헌법개정안 공고는 국민토론의 출발점인 동시에 국민 의사표현 제한의 출발점이 된다. 국민이 비로소 개헌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찬반 의견을 형성해야 할 시점에 집회·서명·통신·녹음·녹화 등 주요 표현 수단이 형사처벌 위험 아래 놓일 수 있다.

 

우려는 실제 사례로 나타났다.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뒤 개헌 반대 집회를 준비하던 자유대학은 선관위로부터 국민투표법 위반 가능성 안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대학은 이에 반발해 5월 2일 여의도역 인근에서 ‘개헌 반대 집회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한미일보 취재 결과, 자유대한호국단도 개헌 반대 시위를 추진했으나 선관위로부터 국민투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고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상종 자유대한호국단 단장은 한미일보에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국민투표 대상이 확정되는데, 선관위가 법 적용 시기를 개헌안 공고일로 잡은 것은 과잉해석”이라며 “현재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사례들은 국민투표법 논란이 추상적 법리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기본권 문제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투표 실시 여부가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도, 헌법개정안 공고 이후 개헌 찬반 의견을 밝히는 집회와 시위가 위법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간 셈이다. 개헌안에 대한 찬반 토론이 가장 활발해야 할 시점에 시민단체들은 먼저 법 위반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제도권의 공백

 

더 큰 문제는 제도권의 대응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투표법 운용기준을 각 정당에 안내하자 정치권의 반발은 있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연계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그러나 국민투표운동 제한 조항 자체를 상대로 헌법소원이나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한 정당 차원의 법적 대응은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시행됐고, 실제 집회 제한 논란까지 불거졌다면 문제는 논평의 영역을 넘어선다. 정당이 할 일은 성명과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국민주권 원리에 비춰 해당 조항의 효력을 다투는 법적 대응이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흐름은 달랐다. 제도권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법적 대응은 시민단체와 개별 법률가 차원에서 뒤늦게 시작됐다. 국민투표법이 국민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을 수 있다는 문제를 알면서도, 정작 그 법의 효력을 헌재에 묻는 일은 제도권의 몫이 아니었다.

 

박주현 변호사가 국민투표법 제37조와 제114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접수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한미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조항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국민주권 원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박 변호사는 국민투표운동 제한 조항의 효력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투표 전의 주권

 

국민투표는 일반 선거와 다르다. 선거가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하는 절차라면, 헌법개정 국민투표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기본 규범을 최종 승인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투표일의 한 표만이 아니다. 그 전에 개헌안의 내용을 알고, 찬반 의견을 나누고, 서명하고, 모이고, 설득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

 

서부자유변호사협회도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국민투표법과 선관위 해석에 따른 기본권 침해 우려를 제기했다. 협회는 국민투표법 제37조와 제114조가 집회, 서명, 통신, 확성장치, 녹음·녹화 등 국민의 의사표현 수단을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 “주권자인 국민들의 입을 막고 손을 묶는 것은 국민투표가 아니다”라며 국민투표법과 선관위 조치로 피해를 입는 국민들을 적극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이번 사안은 개헌안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개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국민은 헌법개정안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민투표는 침묵 속에서 치르는 절차가 아니다. 말하고, 듣고, 반박하고, 설득한 뒤 주권자가 최종 판단을 내리는 절차다.

 

결국 헌재와 법원이 마주할 질문은 하나다. 국민투표에서 국민은 단지 투표장에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국가의 기본 규범을 놓고 말하고 판단하는 주권자인가. 제도권이 손 놓은 사이, 국민의 ‘말할 권리’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문 앞에 서게 됐다.


이 기사는 주간 한미일보(5월1주차.제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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