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 [연합뉴스]
프랑스의 고급 요리 '푸아그라'를 만드는 과정은 잔인하다. 거위의 목에 튜브를 꽂고 강제로 사료를 들이붓는다. 거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오직 주인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간을 붓게 만드는 이 끔찍한 과정을 우리는 '강제 급식(Gavage)'이라 부른다.
최근 서울시교육감 선거판을 보며 나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이념적 푸아그라' 생산 공정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거대한 폭력의 튜브를 끊어내겠다고 나섰다가 좌파 진영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조전혁 후보의 고군분투를 목도하고 있다.
조전혁 후보가 "퀴어·동성애 교육 추방"이라는 현수막을 걸자마자, 벌집을 쑤신 듯 좌파 카르텔이 총궐기했다. 한겨레, 오마이뉴스를 필두로 한 좌파 언론들은 일제히 '혐오 조장', '차별주의자'라는 낡은 프레임을 씌워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여기에 정근식, 한만중 등 진보 교육감 후보들까지 가세해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며 십자군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들이 이토록 필사적으로, 마치 발작하듯 조전혁 한 사람을 공격하며 '혐오 프레임'의 감옥에 가두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조 후보가 그들의 가장 위선적이고 뼈아픈 급소를 정확히 찔렀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가 장악해 온 지난 십수 년의 교실을 복기해 보자. 그들은 입버릇처럼 '다양성'과 '인권'을 외친다.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그러나 성 정체성, 퀴어 이론, 젠더 교차성 같은 개념들은 성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치열하게 논쟁 중인 고도의 사회·철학적 담론이다. 진보 교육계는 이 복잡한 젠더 이념을 마치 구구단표처럼 교실에 들고 와 미성년 아이들의 입을 벌리고 억지로 들이붓는다.
만약 가치관이 형성 중인 아이가 "저는 그게 좀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는 그 즉시 교실에서 '반인권적 미개인'으로 낙인찍힌다. 학부모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차별주의자'로 몰아 입을 틀어막는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면서, 정작 자신들이 정해놓은 특정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다양성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 '답정너'식 전체주의. 이것이 종교적 세뇌지 어떻게 교육인가?
학부모들은 이 끔찍한 이념의 강제 급식에 오래전부터 분노해 왔다. 하지만 '혐오자'라는 무시무시한 주홍글씨가 두려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조전혁 후보가 훌륭한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다수 학부모가 속으로만 앓던 그 금기의 역린을 건드렸다. 좌파 언론과 전교조라는 거대한 카르텔이 자신을 향해 물어뜯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학부모들을 대신해 기꺼이 '혐오자'라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방패막이를 자처한 것이다. 이것은 웬만한 맷집과 확고한 교육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용기다.
어른들이 즐기는 맵고 자극적인 마라탕을 유치원생에게 강제로 떠먹이며 "이 맛을 모르면 너는 편식하는 나쁜 아이야!"라고 윽박지르는 부모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아동학대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발달 단계를 무시한 채 급진적 퀴어 이념을 강제 급식하며, 이를 막아서는 조 후보를 향해 '혐오주의자'라며 거품을 무는 좌파 매체들의 펜대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지금 우리 교실에서 추방해야 할 것은 특정 성소수자가 아니다. 아이들의 교실을 '이념 실험실'로 삼아 진보의 전위대로 길러내려는 '강제 급식의 튜브'를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좌파 언론이 필사적으로 혐오 프레임을 짤수록, 중도 우파 학부모들은 이 싸움의 본질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지금 조전혁 후보가 외롭게 맞서고 있는 싸움은 '동성애 찬반'이라는 얄팍한 논쟁이 아니다. 이념의 푸아그라 공장이 되어버린 교실을 다시 상식과 중립의 공간으로 되돌려놓겠다는, 대한민국 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전선이다. 언제까지 거대한 좌파 언론의 린치에 맞서 싸우는 용기 있는 리더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내버려 둘 것인가. 이제 학부모와 시민들이 그 낡고 폭력적인 프레임을 박살 내고 화답해야 할 때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