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에서 ‘재선거’와 ‘선관위 해체’를 외치는 청년들. [유튜브 캡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표 그 자체가 아니다.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선거는 승패를 가르는 절차이기 전에 국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공정한 선거가 실시되었다고 주장해도 국민 상당수가 그 과정을 믿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이미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바로 그 신뢰의 문제를 드러냈다. 투표용지는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국민 주권이 인쇄된 문서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선거 관리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민센터 서류가 떨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문제는 이 사태가 실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었느냐가 아니다. 그 이전에 선거 관리 기관이 국민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하다. 민주주의는 결과만 공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 역시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심받는 순간 신뢰는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제도 역시 흔들린다.
더 큰 문제는 선관위의 태도다. 선관위는 오랫동안 독립기관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해 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가에서 독립성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책임 없는 독립성은 특권일 뿐이다. 국민의 주권 행사를 관리하는 기관이라면 누구보다 엄격한 감시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반복되는 논란과 실수 속에서도 스스로를 점검하기보다 독립성을 방패로 삼아 온 측면이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국회도, 법원도 견제를 받는다. 그런데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만 사실상 성역처럼 남아 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원칙과도 충돌한다.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고, 감시는 상호적이어야 하며, 책임은 명확해야 한다. 선관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제기되는 선관위 해체론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다.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는 주장도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조직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자는 요구다. 선거 제도를 지키기 위해 선관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체계를 고민하자는 주장이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며, 책임지는 기관을 원한다. 투표용지 부족 같은 초보적인 문제조차 그 원인과 책임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적은 패배가 아니다. 불신이다. 그리고 지금 선관위가 직면한 위기 역시 선거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국민이 더 이상 믿지 못하는 기관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선관위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만약 현재의 선관위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해체와 재구성을 포함한 근본적 개혁 역시 금기시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선관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관위 해체의 당위성은 조직에 대한 적대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 주권과 선거 신뢰를 다시 세우려는 요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자유주의가 말하는 책임 정치의 출발점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