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記者)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판사(判事)는 사건을 가르는 사람이고, 검사(檢事)는 사건을 살피는 사람이며, 경찰(警察)은 경계하고 살피는 제도다.
한자만 놓고 보면 이 네 직업의 뜻은 단순하다. 기자는 기록자이고, 판사는 판단자이며, 검사는 점검자이고, 경찰은 경계자다.
그러나 자유민주사회는 더 이상 직업의 이름만으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름은 출발점일 뿐이다. 오늘의 시민은 그 이름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네 직업 가운데 자유민주사회의 첫 장과 가장 먼저 맞닿는 것은 기자다. 경찰은 사건이 생긴 뒤 움직이고, 검사는 혐의를 법률의 언어로 정리하며, 판사는 마지막에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 이전에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가 알게 만드는 일, 감춰진 사실을 끌어내 공론장에 올리는 일은 대개 기자의 몫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부속 장치가 아니라 첫 장이다. 사람이 말할 수 없고 사회가 알 수 없으면, 선거와 재판과 의회도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 문화가 본격적으로 사회 전면에 올라오면서 이 직업들의 이름은 기묘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기자는 기레기가 됐고, 판사는 판새, 검사는 검새, 경찰은 짭새로 불렸다. 이것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었다. 정보가 보편화되고 기사와 판결과 수사, 현장 대응이 실시간으로 비교·공유되면서 권위 직군에 대한 불신이 조롱의 언어로 굳어진 결과였다.
권위를 전제로 존중받던 직업은 이제 기능으로 평가받는 직업으로 바뀌었다. 이름이 먼저 무너졌다는 것은 신뢰가 먼저 무너졌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기자에 대한 비하는 특히 상징적이다.
기자는 본래 기록자였지만, 인터넷 시대의 대중은 기자를 더 이상 기록하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다. 무엇을 썼는가보다 무엇을 검증했는가를 먼저 묻는다.
오보와 베끼기, 선택적 침묵과 편파적 프레임이 반복되면 기자는 기록자가 아니라 오염된 정보의 유통업자로 인식된다.
그래서 오늘의 기자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사실을 검증해 시민의 판단을 돕는 사람으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 속보보다 신뢰, 주장보다 맥락, 확신보다 검증이 기자의 현대적 의미가 되어야 한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사는 더 이상 법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신뢰받지 않는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시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하면, 판결은 권위의 문서가 아니라 불신의 문서가 된다.
검사는 국가 형벌권의 문지기여야지 처벌의 선봉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찰은 단속의 얼굴이 아니라 시민 안전의 최전선이어야 한다. 네 직업 모두 과거의 권위 직업에서 오늘의 책임 직업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이 전환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면 안 되는 축은 여전히 기자다. 기록과 검증이 무너지면, 나머지 판단과 처벌과 경계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첫 장을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2025년에도 인터넷 ‘부분자유’ 국가로 평가했고, 2024년 상세 보고서에서는 형사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상 온라인 명예훼손 가중처벌, 5·18 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을 온라인 표현을 위축시키는 법적 구조로 적시했다.
2025년판 요약본에서도 기자와 언론사가 보도로 인해 명예훼손 혐의에 계속 직면했고, 정부의 규제 압박과 형사수사가 비판적 보도를 억누르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짚었다.
국경없는기자회(RSF)도 비슷한 경고를 내놨다. RSF는 2025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을 180개국 중 61위로 평가했고, 대선 국면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언론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공격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한때 동아시아의 언론자유 선도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이제는 ‘문제적(problematic)’ 구간에 머무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해외 언론과 국제언론단체의 우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P는 2025년 12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 국회가 ‘허위 또는 조작된 정보’ 보도에 대해 최대 5배 징벌배상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하면서, 기자단체와 시민자유 옹호 단체들이 공직자·정치인·대기업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어 IPI는 2026년 1월 이른바 ‘가짜뉴스법’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제한할 수 있다며, 7월 시행 전 인권영향평가를 요구했다.
핵심은 개별 사건 하나가 아니다.
국제기구와 언론단체가 우려하는 것은 한국에 이미 존재하는 강한 형사 명예훼손 체계 위에 온라인 가중처벌, 역사 관련 처벌 조항, 허위정보 규제가 계속 덧씌워지는 구조다.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형사고소, 압수수색, 수사 압박이 반복되면 그 효과는 단순히 허위정보 차단에 머물지 않는다. 언론사는 자기검열을 시작하고, 취재원은 침묵하며, 비판적 보도는 위험한 선택지가 된다.
권력 비판을 반박과 입증으로 상대하지 않고 수사와 입법과 형벌의 언어로 다루기 시작하면, 공론장은 토론장이 아니라 관리 구역으로 변질된다.
여기서 5·18 관련 처벌 조항은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어떤 역사적 진실을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강할수록, 그 보호 방식은 더 엄밀해야 한다.
그러나 형사처벌이 역사 논쟁의 기본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그 칼은 쉽게 넓어진다. 오늘은 5·18이고, 내일은 다른 역사일 수 있으며, 모레는 권력기관이 민감하게 여기는 정치적 서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사회에서 역사 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더 엄밀한 입증과 더 높은 공적 기준으로 조정돼야 하는 가치다.
국가가 서사를 지키기 위해 형벌권을 쉽게 꺼내는 순간 자유는 방어가 아니라 예외가 된다.
오늘 한국의 언론 자유는 단순히 언론사가 힘드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라는 이름이 왜 조롱의 언어로 바뀌었는지를 되짚어 보면 답은 오히려 분명하다.
시민은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됐고, 더 빨리 비교하게 됐으며, 더 직접적으로 감시하게 됐다. 이 변화는 언론에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은 여기서 책임의 언어가 아니라 형벌의 언어로 답하고 있다. 비판적 보도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검증과 더 치열한 반박, 더 투명한 사실 공개이지, 곧바로 형사절차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 간첩단 체포 사건’을 둘러싸고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은 일부 언론사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측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자제해 온 이유는 분명하다.
언론의 책무는 형벌의 언어를 앞세우는 데 있지 않고, 검증의 장에서 사실과 근거로 결론을 밝히는 데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소보다 검증이, 낙인보다 입증이 먼저라는 원칙을 지켜 왔다.
결국 자유민주사회의 건강성은 이 질문 하나에 달려 있다.
권력은 비판을 어떻게 대하는가. 반박할 것인가,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수사와 입법과 형벌로 눌러버릴 것인가.
표현의 자유는 불편한 말까지 보호하기 때문에 자유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이 싫어하는 기사까지 보호하기 때문에 자유다. 그것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관리된 정보와 통제된 공론장뿐이다.
한미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허겸 대표에 대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까지 강행된 이번 사태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권력이 비판 언론을 형사절차로 압박하기 시작할 때 무너지는 것은 한 언론사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첫 장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함께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