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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요란한 언론의 ‘야단법석’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06 11: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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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출 의미는 축소, 빈약한 반론 근거
  • 전쟁 본질은 뒷전, 메신저만 공격에 몰두
  • 외신에 부화뇌동하는 한국 언론의 민낮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1월24일 이란 시위 관련으로 5천137명 사망, 1만2904건을 더 조사하고 있으며 최소 7402명의 추가 중상자가 있는 것으로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불가(佛家)에서 쓰는 말 가운데 ‘야단법석’이 있다. 본래는 여러 승려가 모여 불법을 강론하는 큰 법회를 뜻했지만, 오늘날에는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며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더 익숙하다. 

 

4월5일 미군 전투기 승무원 구출 소식이 전해지자, 서방 언론과 이를 받아쓴 한국 언론은 일제히 법석을 떨었다. 

 

문제는 좌파 성향의 외신과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해 보도한 한국 언론 모습이다. 

 

실종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미국의 실패와 균열을 부각하더니, 막상 구출 소식이 나오자 이번에는 어김없이 “그러나”와 “그런데”가 뒤따랐다. 마치 이 한 번의 격추와 구출이 이란전쟁 전체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장면인 것처럼 떠들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단어가 바로 ‘야단법석’이다.

 

전쟁은 인간사의 예외가 아니다. 인류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은 전쟁이었고, 역사는 전쟁에 도덕적 판결문을 써주기보다 그 전쟁이 만든 변화와 결과를 기록해 왔다. 

 

누가 더 선했는가보다 누가 질서를 바꿨는가, 무엇이 무너졌는가, 무엇이 새로 세워졌는가를 본다. 

 

그런데 이번 이란전 보도는 정반대였다. 전쟁의 원인과 위협의 실체, 전황의 큰 흐름과 결과의 방향은 뒤로 밀리고, 구출작전 한 장면의 감정적 소비만 앞세워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과장이 아니라 의미 축소의 습관이다. 

 

로이터(Reuters)는 이번 구출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큰 성공”이라고 적으면서도 곧바로 미군 사상자와 헬기 피격, 이란의 반격 능력을 이어 붙였다. 가디언(Guardian) 역시 구출의 선전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제목과 본문에서 즉시 “이란은 여전히 싸울 수 있다”는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구출 성공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니 인정은 하되, 그 정치적·군사적 의미가 커지지 않도록 곧바로 상쇄 문장을 붙이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 판단의 방향만이 아니다. 그 판단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한 차례 격추와 한 번의 구출작전만으로 미국의 공중우세 전체에 균열이 갔다거나, 구출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전략적 성공의 의미가 줄어든다고 말하는 것은 논증이 지나치게 얇다. 

 

전쟁에서 피해와 비용은 본래 발생한다. 비용이 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반증이 아니라 전쟁의 속성이다. 

 

그런데도 대표적인 서방 좌파 언론은 그 당연한 현실을 마치 미국의 전략적 취약성을 입증하는 새로운 발견처럼 포장한다.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인상을 골라 붙이는 태도에 가깝다.

 

여기서 균형은 필요하다. 이번 구출작전의 의미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이란전 전체의 성패를 판정하는 단일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방 언론의 태도가 더 이상하다. 구출의 의미를 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것도 문제다. 

 

적지 깊숙이 들어가 포로 발생 없이 생존 승무원을 구출한 것은 그 자체로 미국의 군사력, 지휘 체계, 국가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은 이미 사망자와 부상자를 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생존 장병을 끝내 빼내는 능력은 전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승리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성공을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

 

이 야단법석은 일부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방 지도자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연합은 개전 직후 자제와 국제법 존중을 촉구하는 공동 입장을 냈고, NATO 내부에서는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을 둘러싼 긴장과 거리두기가 드러났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가 이란전쟁 관련, 미군용기 운용에 제약을 둔 일은 한가지 사례다. 

 

현실의 질서는 미국의 군사력과 해상 통제력에 기대면서도, 정작 그 힘의 행사에는 정치적 책임을 함께 지려 하지 않는 태도다. 

 

물론 정치인들의 경우에는 언론보다 이해의 폭이 크다. 여론과 선거, 에너지 가격, 동맹 균열, 국내 정치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더 위선적이기도 하다. 

 

언론의 위선이 ‘관념의 위선’이라면, 정치의 위선은 위험을 남에게 맡긴 채 외교의 문장으로 자기 비겁함을 감추는 ‘계산된 위선’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뼈아픈 문제는 한국의 일부 올드미디어다. 

 

이번 야단법석은 서방 언론이 만들고 한국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 구조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만 보더라도 구출 장면의 극적 서사와, 곧이어 붙는 “더 위험해진 전쟁” 프레임이 같은 날 반복됐다. 

 

“이란 한복판, 미 특수부대 투입… 교전 끝 실종 미군 극적 구출” 같은 기사와, 구출 직후 전쟁이 더 위험해졌다는 외신 해석을 옮긴 기사 사이에는 한국 언론 스스로의 판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구출의 군사적 의미를 한국 언론이 자체 해석한 것이 아니라, 외신이 짜놓은 드라마와 경고의 문법을 번갈아 중계한 셈이다. 신중함이 아니라 ‘사고의 외주화’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언론의 현실 감각 결핍이다. 

 

북핵이라는 실질적 위협 아래 놓여 있는 나라의 언론이라면, 이란 핵 문제와 신정체제의 폭력성에 더 민감해야 마땅하다. 

 

북한은 여전히 핵·미사일 능력을 확대하고 있고, 한국과 주변 지역 안보에 직접적 위협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란 역시 국제원자력기구가 2026년 2월 보고서에서 미신고 핵물질과 핵 관련 활동, 안전조치상 미해결 문제를 다시 지적한 대상이며, 미국 국무부는 지금도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한국 언론은 이란 체제의 본질보다 미국의 개입 방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득실에 먼저 시선을 둔다. 

 

북핵의 공포 아래 살면서도, 정작 핵과 독재 체제가 국제질서에 던지는 실질적 위협은 흐리고 트럼프라는 메신저만 먼저 두드리는 것이다. 

 

메시지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우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비겁함, 바로 그 점에서 한국 언론은 일부 서방 언론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국제정치는 국내 형사법정이 아니다.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만으로 선악이 완성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어떤 위협이 존재했는가. 그것이 얼마나 방치될 수 있었는가. 그 위협을 누가 어떤 비용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 서방은 오랫동안 이 질문의 실제 부담을 미국에게 떠넘겨 왔다. 그리고 미국이 행동에 나서면 뒤늦게 도덕의 언어를 꺼내 자기 표정을 관리해 왔다. 

 

언론은 미국의 성공을 깎아내리고, 지도자들은 미국의 부담 위에 올라선 채 자제와 균형의 문장으로 비겁함을 덮는다. 한국 언론은 그 프레임을 다시 받아 적으며 판단의 책임을 외신에 위탁한다. 이번 이란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의 본질은 장면이 아니라 결과에 있다. 

 

누가 한 번 격추당했는가보다, 누가 전쟁의 흐름을 만들고 누가 질서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구출작전 한 장면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며 성공을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리고 정작 더 본질적인 위협인 이란 핵과 신정체제의 폭력성은 뒤로 미루는 태도야말로, 이번 이란전 보도를 둘러싼 서방과 한국 언론의 진짜 민낯이다. 

 

이것은 냉정함이 아니다.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벌이는 ‘야단법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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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Kim33162026-04-06 11:35:35

    And I will bless them that bless thee, and curse him that curseth thee: and in thee shall all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 - Gen.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https://www.youtube.com/watch?v=jV-kxBZII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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