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에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전공정(FAB)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에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전공정(FAB)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는 “마무리 단계”라고 말하고 있고 대통령은 주요 그룹 총수들과 연쇄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될 핵심 기간산업의 입지가 전문가들의 검토나 공론과 제도적 절차적 검증 없이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불러내 비공개 회동을 하고 사실상 결정되고 있는 지금의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력이 기업의 투자 입지와 규모를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경영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제23조의 재산권, 제119조 제1항의 시장경제질서는 기업이 어떤 시기 어느 곳에 얼마를 투자할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특히 한 기업의 경쟁력이 곧바로 인재 유치와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우리 헌법현실에서 기업경영 자유의 원칙에 대한 침해는 대통령에 대한 중대한 탄핵사유로 작동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라는 공익재단 설립을 지시하고, 당시 전경련을 매개로 삼성과 SK 등 대기업들이 수백억 원을 출연하도록 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것이 법률상 근거도 없이 대통령의 지위와 영향력을 동원하여 해당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탄핵 사유로 인정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직접 불러 그 기업의 핵심 경영 판단에 관한 내용을 조율하고자 한 것 역시 부당한 처사이자 위헌적 행동이다.
특히 그 규모가 수백억 원이 아니라 수백조 원에 이르고 그 내용도 일회성 기부가 아니라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핵심 생산설비 입지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이 기업경영과 국민경제에 미치는 무게는 그때 스포츠재단의 경우와 비할 바가 아니다.
설사 삼성, SK 두 기업의 위상으로 인해 어느 정도 국민 공론을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를 대통령이 그 총수를 만나서 사사로이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이해가 고려되어야 하는 국민경제의 중대 사안이라면 공론의 장에서 논의하되 해당 기업의 전문적 경영 판단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도 없이 ‘대통령 독대’가 선행되고 정해진 정치적 결론에 따라 일방적으로 투자와 입지 선정과 같은 기업경영의 핵심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이런 권력 행사의 헌법 적합성은 당연히 문제될 수밖에 없다. 대체 이 정권이 그 후과를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번에 발표된 대통령과 총수 간 비공개 회동을 통한 입지·투자 조율 결정은 헌법적 관점이나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한 논의가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모든 논의 과정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여야 한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사실상의 강제와 정치적 압박을 중단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경영의 자유를 온전히 존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특정 정치세력이 국민경제를 약탈하기 시작하면 나라의 장래는 없다.
2026년 6월26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이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