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윤동주는 오직 문학성만으로 이 자리에 오른 것일까? 아니면 한일병합기라는 시대와 해방 이후의 역사 교육이 함께 만들어 낸 상징일까?"
윤동주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교과서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어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한 번쯤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윤동주는 오직 문학성만으로 이 자리에 오른 것일까? 아니면 한일병합기라는 시대와 해방 이후의 역사 교육이 함께 만들어 낸 상징일까?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는 시집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묶어 출판하려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후인 1948년 1월30일 정음사에서 유고시집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초판에는 31편이 실렸고, 이후 유족과 지인들이 원고를 추가로 발굴하면서 현재는 116편이 전해진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오늘날의 윤동주는 생전의 명성이 아니라 사후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진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대중적 명성을 얻은 시인이 아니라, 해방 이후 문단과 출판계, 교육계가 그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면서 국민적 시인으로 자리 잡은 경우다.
문학 연구에서도 윤동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가 아니다. 한 축에서는 ‘저항’과 ‘민족’을 강조하고, 다른 축에서는 ‘순수 서정’과 ‘내면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민족시인 윤동주’라는 이미지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시대적 해석과 역사적 기억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물론 윤동주의 작품 가운데 ‘서시’ ‘별 헤는 밤’ 같은 시가 지금도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사에는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백석, 이상처럼 독창성과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받는 시인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윤동주를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학적 판단이라기보다 역사적 상징성을 함께 고려한 결과라고 볼 여지도 있다.
특히 해방 이후 국가와 교육은 윤동주를 민족의 양심과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적극 소개해 왔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면서 이러한 상징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만약 윤동주가 한일병합기라는 특수한 시대를 살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 옥사하지 않았으며, 평범한 시인으로 생을 마쳤다면 지금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시인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의 윤동주는 문학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의 비극과 사후의 기억, 국가적 기념과 교육이 함께 만들어 낸 상징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역사적 상징과 문학적 평가는 같지 않으며, 두 가지를 구분해서 바라보는 태도가 오히려 한 시인을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