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전담재판부법 반대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22일 11시부터 23일 11시까지 약 24시간동안 반대토론을 이어갔다. 야당 대표로 최초 참여, 기존 17시간 최장 기록을 갱신했다. [사진=연합뉴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거리에서 캐롤을 듣기 힘들다. 국회는 연일 다투고, 물가와 환율, 쿠팡 사태까지 겹치며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연말의 정치·경제 환경은 한마디로 혼돈이다.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재명 정권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단순한 지지율 등락이라기보다 정치 전반에 대한 피로와 불신이 누적된 결과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특이한 변화는 호남 민심이다.
대통령의 통일교 ‘청산’ 발언을 기점으로, 그동안 이재명 정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호남 여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논의에도 큰 변동이 없던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자금과 부패 문제로 연결되며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은 민주당이 통일교 특검법에 대해 찬성으로 돌아선 주된 배경으로 이런 민심 변화를 꼽는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입법 폭주’를 프레임으로 공세를 이어왔지만, 민심의 변곡점을 만들기에는 부족했는데 기회를 맞았다는 평가다.
22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나서 23시간 동안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간 장면은 이런 정치적 긴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속도를 늦추려 애쓰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헌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재명 정권의 태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검을 꺼내 들고, 재판이 불안하면 재판 구조를 손보려는 시도가 반복되면서 정치가 헌법이 정한 삼권분립의 선을 다시 긋고 있다는 것이다.
법학자들은 이 문제를 ‘권력이 헌법상 독립 영역을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과 배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입법을 통해 반복될 경우, 사법의 독립과 기본권 보장은 헌법적 원칙이 아니라 조정 가능한 변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사안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권력이 헌법이 정한 독립 영역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조정 가능한 영역’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이 같은 인식의 흔적을 사안별로 정리하면 특검법,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드러난 징후는 특검법의 상시화다. 특검은 기존 수사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의 예외적 장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마다 특검이 기본 옵션처럼 호출되면서, 예외는 규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개별 사건의 공정성 논란을 넘어, 헌법이 예정한 사법 절차에 대한 정치의 신뢰 철회로 읽힌다. 법 앞의 평등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는 이유다.
이 흐름은 수사 단계에 머물지 않았다. 내란 사건 전담재판부 설치 논의는 재판 영역으로의 확장이다. 재판 효율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 구성과 배당 문제까지 입법으로 건드리려는 시도는 사법부와의 긴장을 피하기 어렵다.
수사를 믿지 못해 특검을 만들고, 재판 결과를 신뢰하지 못해 재판 구조를 재설계하려는 흐름은 헌법이 설정한 권력의 경계선을 직접 건드린다는 것이 법조계의 주류적 시각이다.
표현의 영역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 논의는 허위정보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판단의 주체를 개인과 사법에서 행정 권력으로 이동시키는 구조를 내포한다.
사후 책임이 아닌 사전 차단을 강화하는 방식은 표현의 자유와 적법절차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권 영역까지 관리 대상으로 삼으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산업 정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RE100 산업단지 특별법 추진은 정책의 찬반을 떠나, 충분한 사회적 숙의 이전에 국가 전략을 확정하려는 최근 입법 방식의 반복을 보여준다.
분야는 달라도 결정 방식은 닮아 있다. 이른바 ‘입법 내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를 정리하면 “합의와 설명보다 결정과 속도가 앞선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적 정당성의 절차가 압축되는 장면이다.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한국 정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민생은 실종되고 권력이 헌법을 지배하려는 시도의 반복’이다.
그러나 민심은 방향을 바꾸고 있다. 지금 흔들리는 것은 특정 정책이나 법안 하나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권력이 헌법의 경계 위에 다시 선을 긋고 있다는 불안이다.
다수는 면허증이 아니다. 권력은 헌법 위에서가 아니라 헌법 안에서 행사될 때만 정당성을 얻는다. 그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민심은 가장 먼저 반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