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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재외국민 참정권 넓힌다더니… 선관위가 개정 취지 꺾었다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15 1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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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투표법 개정 취지는 ‘국적 기준 참정권 확대’
  • 선관위, 다른 확인 수단 두고도 여권 앞세워 입구 좁혀
  • 부정선거 시도 의심도… 선거 무결성 높일 제도 개선 필요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2014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10년만인 3월에 국민투표법이 개정됐다. 재외국민 참정권 확대가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 헌재 심판 요지다. [사진=연합뉴스]6·3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추진되는 가운데, 개정 국민투표법에 따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재외투표인 등록신청 절차가 새 논란에 휩싸였다.

 

개정 국민투표법은 주민등록이 없거나 국내거소신고가 없는 재외국민에게도 국민투표 참여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실제 등록 절차에서는 여권번호가 없으면 신청이 진행되지 않는다. 주민등록이 없거나 말소된 재외국민을 제도 안으로 넣겠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선관위가 여권번호 유무로 사실상 신청의 첫 문턱을 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월 14일 기자가 중앙선관위 재외투표인 등록신청 절차를 직접 확인한 결과, 온라인 신청 단계에서는 여권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신청 화면에서는 여권번호가 필수 항목으로 작동했고, 번호를 넣지 않은 상태에서는 접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선관위는 한미일보와의 통화에서 “온라인 신청뿐 아니라 공관 방문 신청 등 다른 방식에서도 여권번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신청은 열렸지만 입구는 좁았다

 

이번 개정의 출발점은 분명했다. 주민등록이 없거나 국내거소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가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다시 말해 이번 개정은 주민등록 여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인지 여부, 곧 국적을 기준으로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실제 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제도는 넓혔다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신청의 첫 관문은 여권번호로 좁혀 놓았기 때문이다. 개정 취지가 국적 기준의 참정권 보장 확대라면,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을 다시 여권번호라는 행정적 문턱 앞에 세우는 방식은 그 취지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이 없고 여권도 없는 재외국민의 경우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국민투표 참여를 위해 먼저 재외공관에서 여권 발급 또는 재발급 절차를 밟아야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제도 설명만 보면 참정권의 문호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시 한국 행정 체계 안으로 들어와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문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전직 법원장 출신 변호사 A씨는 “법이 보장한 권리가 행정 절차 앞에서 다시 좁아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 취지의 훼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재외투표인 등록신청 화면. 여권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신청이 불가능하다. [사진=선관위 홈페이지 캡처]

국적 확인, 여권만이 답인가

 

더구나 국적 확인 수단이 여권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대법원이 관리하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증명서류인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로도 국적과 신분의 연결 확인이 가능하다.

 

기본증명서에는 본인의 출생과 국적 등 신분 변동 사항이 기재되고, 가족관계증명서에는 가족관계가 표시된다.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공적 서류 체계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앙선관위 신청서 양식에도 가족관계등록정보 조회 동의 문구가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국적 확인의 사실상 공통 출입구를 여권번호로 잡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법 개정은 국적자인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뤄졌는데, 실제 운영에서는 여권번호가 등록의 선행 조건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는 국적을 기준으로 문을 연 제도를, 여권 소지 여부에 따라 다시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외부에서는 이를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권번호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확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외교부 여권 행정 체계에 기대거나 넘길 수 있지만,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 등 가족관계등록부상 자료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선관위가 대법원 기록과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실무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정권 보장의 기준을 국적 확인의 충실성보다 행정 처리 편의와 책임 회피에 맞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법문에 없는 기준, 누가 세웠나

 

문제는 선관위가 여권을 국적 확인 방법으로 지정한 법적 근거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국민투표법 제53조 제2항은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고 공직선거법상 재외선거인명부에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이 외국에서 투표하려는 경우 재외투표인 등록신청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공관 직접 방문, 순회공관 직원 상대 서면 신청, 우편·전자우편 또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신청을 열거하고 있다. 

 

즉 조문이 직접 규정하는 것은 신청의 방식과 경로다. 그러나 해당 조문 어디에도 여권으로 국적을 증명해야 한다거나, 여권번호를 등록신청의 필수 요건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미일보 취재 결과, 국민투표법 체계상 해당 조항에 직접 연결된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확인되지 않았다. 시행규칙은 아니지만 선관위 내부의 실무규정집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법률에도 직접 근거가 보이지 않고, 해당 조항을 구체화한 공개 하위규범도 없는 상태에서 실무상 여권번호를 필수처럼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선관위가 정한 내부 규정집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앙선관위의 설명도 일관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 공보팀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을 정리하면, 통화 초기에는 여권번호 요구가 법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가, 이어 규칙에 따른 것이라는 방향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추가 확인 과정에서는 “재외선거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취지로 정리됐다. 

 

결국 여권번호 요구의 직접 근거가 법인지, 규칙인지, 내부 실무 기준인지에 대해 선관위 스스로도 즉답하지 못한 셈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박주현 변호사는 선관위 규칙으로 국적 검증 방법을 사실상 여권번호로 특정한 것에 대해 “헌법 제114조 제6항이 정한 규칙 제정권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독자적인 규칙 제정권을 가진 헌법기관이지만, 그 권한 역시 어디까지나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 국민투표법 제53조 제2항은 재외투표인 등록신청의 방법만 규정할 뿐, 여권번호를 국적 확인의 필수 요건으로 직접 정하고 있지 않다”며 “선관위가 여권번호를 사실상의 공통 출입구로 운영하는 것은 법률이 정하지 않은 기준을 실무 또는 규칙으로 덧붙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절차 불신 키우는 선관위의 선택

 

부정선거 가능성을 의심하는 측에서도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고 있다. 

 

등록 단계에서 국적 검증 과정이 공개되고 설명되지 않으면, 명부 등재의 정확성에 대한 불신은 물론 투표지 발송과 회송, 개표 전 과정에 대한 의문으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국적 확인이 가능한 가족관계증명서류 체계가 별도로 존재하는 만큼, 왜 하필 여권번호가 먼저여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들은 여권 위조는 가능하지만, 가족관계증명부를 통한 확인은 위조가 불가능하고 책임 범위가 확실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현행 방식이 지속될 경우, ‘위조 여권의 투표소 확인 여부’는 물론 ‘조총련계 재일동포나 중국 조선족의 투표참여 확대’로 이어질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곧바로 부정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박주현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여권번호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확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외교부에 기대거나 넘길 수 있지만,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 등 가족관계등록부상 자료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선관위가 대법원 기록과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실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책임 소재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선거와 투표의 무결성은 결과만이 아니라 절차의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하다. 

 

개정 국민투표법의 취지는 국적자인 재외국민의 참정권 보장에 있다. 그런데 실제 신청의 첫 관문은 온라인이든 방문이든 여전히 여권번호다. 

 

국적 확인은 가족관계증명서류로도 가능한데, 선관위가 법적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 채 여권번호를 사실상의 공통 출입구로 운영하고 있다면 이는 참정권 확대라는 입법 취지를 스스로 좁히는 행정 해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앙선관위가 국적 확인 기준으로 여권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 보다 분명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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