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데이터처 홈페이지 캡처.
3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한국의 사회지표’를 두고, 또다시 통계 마사지 의혹이 불거졌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우리 국민이 느낀 사회갈등 가운데 ‘보수와 진보’ 갈등이 80.7%로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어 주관적 웰빙 항목에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 비율이 80.8%라고 제시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삶의 만족도 80.8%가 원자료를 그대로 제시한 값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도자료 주석에 따르면 이 수치는 0~10점, 즉 11점 척도에서 6점 이상을 준 응답자의 비율이다.
같은 삶의 만족도 원자료가 불과 3주 전에는 6.4점이라는 점수형 지표로 제시됐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번 논란의 핵심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누가, 왜, 어떤 기준으로 같은 데이터를 다시 가공해 전혀 다른 지표로 내놨느냐는 데 있다.
삶의 만족도 80.8%가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수치는 ‘매우 만족’만 따로 집계한 결과가 아니다. 6점은 일반적 체감으로 보면 ‘매우 만족’이라기보다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까지 포괄할 수 있는 구간이다.
원래의 점수 분포나 평균값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은 채 6점 이상을 모두 묶어 하나의 만족 비율로 제시하면, 같은 원자료라도 전혀 다른 의미의 숫자가 나오게 된다.
한미일보는 국가데이터처가 3월 5일과 31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나온 언론 보도를 비교했다.
‘개인의 삶의 질’과 관련한 데이터는 두 자료 모두 동일한 원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 제목만 봐도 결과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금방 드러난다.
점수형 자료가 제공된 3월 5일 보도자료를 근간으로 쓴 기사 제목을 보면
△ 한국인 삶의 만족도 6.4점 ‘제자리’… OECD 38개국 중 33위(뉴스1)
△ 한국인들 삶 만족도, 또 OECD 최하위권… 자살률도 상승(YTN)
△ 주식 오르고 집값 떨어진다는데… 한국인 삶 만족도, 아직 OECD 바닥(매일경제) 등이다.
전반적으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반면 삶의 만족도 80.8%를 제시한 3월 31일 보도자료에 따른 기사들은
△ 지난해 삶의 만족도↑·고립감↓… 저출산·소득 불평등은 여전(아주경제)
△ 국민 10명 중 8명은 삶에 만족… “소비·여행 증가 영향”(KBS)
△ 해외여행 경험률 2년 새 2배↑… ‘삶 만족도’도 개선(이투데이) 등이다.
전반적으로 긍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통계는 같았지만, 같은 통계를 자르고 배열하는 방식을 바꾸자 국민이 접하는 사회의 인상도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미일보 취재 결과, 조사를 수행한 한국행정연구원은 “원조사는 OECD 행복지수 기준에 맞춰 0~10점 척도로 진행했다”며 “이를 6점 이상으로 묶어 만족 항목으로 만든 것은 국가데이터처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가데이터처는 한미일보와의 첫 통화에서는 “한국행정연구원이 보내준 자료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한쪽은 국가데이터처의 요청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연구원이 보낸 자료를 반영했을 뿐이라고 한 셈이다.
그러나 국가데이터처는 두 번째 통화에서는 “확인해 보니 우리가 요구한 것이 맞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또 한국행정연구원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뜻도 밝혔다. 국가데이터처는 아울러 이런 방식이 2019년부터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고, 2020년 이후에도 같은 기준이 계속 적용돼 온 정황이 확인됐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이는 점수형 자료를 일정 기준점에서 잘라 비율지표로 재구성한 경우다. 평균 6.4점과 6점 이상 응답 비율 80.8%는 같은 원자료에서 나왔더라도 서로 다른 통계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런 지표 전환에는 사전에 정해진 기준, 일관된 적용 원칙, 충분한 설명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자료라도 전혀 다른 사회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통계의 해석을 바꾸거나 의미를 달리 부여하려면 통계전문가의 숙의와 행정적 결정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국가데이터처는 이와 관련한 한미일보의 질문에 “이를 뒷받침할 공식 처리 지침은 없다”고 밝혔다.
국가데이터처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2019년 지표 체계 통합관리 및 활용도 제고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 357쪽’이었다. 보고서 작성자는 (사)한국삶의질학회(학회장 한준)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용역 결과물일 뿐, 내부 지침으로 확정된 문서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남는 질문은 더 분명하다. 공식 지침도 없이 누가 어떤 판단으로 같은 데이터의 가공 기준을 정했고, 왜 그 방식을 계속 적용했느냐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괄적 해명이 아니다. 누가 처음 6점 이상을 ‘만족’으로 처리하자고 했는지, 그 기준은 어떤 검토를 거쳐 채택됐는지, 그 판단의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사진 1 '2017년 한국의 사회지표' 보도자료 중 삶의 만족도 관련 통계자료. 점수 구간별 응답 분포와 평균 형태로 제시돼 있다. [사진=한미일보]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가공 방식이 이번 보도자료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같은 기준이 존재했던 것처럼 자료를 재정리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일보가 확보한 2017년 통계청 ‘한국의 사회지표’ 보도자료를 보면, 삶의 만족도는 각 점수 구간별 응답 분포와 평균 형태로 제시돼 있다. <사진1 참조>
2017년 자료는 ‘분포와 평균’이었는데, 2025년 자료에는 2017년 데이터도 ‘만족 비율 시계열’로 바뀌어 있다. 마치 처음부터 만족 비율 시계열을 적용해 온 듯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데이터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보여주는 행정의 방식을 바꾼 것이다.
'2025년 한국의 사회지표' 보도자료 중 중 삶의 만족도 관련 통계자료. 2017년 통계도 만족비율 시계열로 바뀌어 작성돼 있다. [사진=한미일보]
정부의 보도자료는 국민에게 공개하는 공문서이다. 과거 자료를 변경했다면 마땅한 설명이 따라야 한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번 자료가 여러 기관이 공표한 통계를 재분류·가공해 만든 연간 종합지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경 기준은 더 엄격하고 투명해야 한다.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삶의 만족도’가 3주 전에는 6.4점으로, 31일에는 80.8%로 제시됐다면, 국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누가 왜 같은 데이터를 전혀 다른 의미의 지표로 다시 잘랐느냐”는 것이다.
통계는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통계가 사회를 설명하는 대신 행정의 편의나 의도에 따라 다른 의미의 숫자로 재구성된다면, 흔들리는 것은 한 장의 보도자료가 아니라 국가 통계 전반에 대한 신뢰다.
과거 국가 통계를 둘러싼 왜곡 논란으로 신뢰 훼손이 벌어진 전례까지 감안하면, 이번 의혹 역시 단순한 수치 해석 문제가 아니라 ‘국가 통계를 믿을 수 있느냐’는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삶의 만족도 80.8%라는 숫자가 높으냐 낮으냐가 아니다. 같은 원자료가 왜 6.4점에서 80.8%로 바뀌었는지, 그 기준을 누가 만들었고 왜 공식 지침도 없이 계속 적용했는지, 바로 그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국가데이터처는 더 이상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제는 숫자가 아니라 책임을 내놓아야 한다.
같은 원자료가 3주 만에 6.4점에서 80.8%가 됐다면, 문제는 통계가 아니라 그 통계를 자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