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혁명당 사건이 터지면서 관련 인물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잡지, 주점, 인맥이 함께 묶여 언급됐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를 따로 떼어 놓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시기, 같은 대학가에서 여러 일이 겹쳤다. 거리에서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교정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가 빠르게 번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집회와 토론, 잡지였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 보면, 그 뒤에서 사람을 묶고 따로 엮어 나가는 움직임도 함께 있었다. 청맥과 혁명전선을 따로 설명하기 힘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청맥은 김질락과 이문규가 관여한 잡지
청맥은 1964년 8월에 나온 월간지였다. 1967년 6월호를 끝으로 멈췄고, 모두 27권이 남았다. 독자는 대학생과 젊은 지식인이었다. 베트남전쟁, 한일협정, 통일 문제 같은 주제가 계속 실렸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이 잡지를 서로 돌려 읽는 일이 흔했다. 한 번 읽힌 글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그렇게 같은 생각이 반복해서 전해졌다. 단순한 취미 잡지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지를 만든 사람들도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발행인은 김진환이었다. 실제 운영과 기획에는 김질락과 이문규가 깊이 관여했다. 김질락은 서울대 문리대 출신으로 언론 경험이 있었고, 이문규 역시 서울대 정치과 출신으로 창간 과정에 참여했다. 이후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서 김종태, 김질락, 신영복, 이문규의 이름이 함께 묶여 등장한다. 인물들이 겹친다는 점이 눈에 걸린다.
청맥과 함께 언급되는 공간이 학사주점이다. 겉으로 보면 그저 술집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생과 지식인이 모이던 자리였다. 청맥을 읽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잡지는 글로 생각을 퍼뜨렸고, 주점은 사람을 이어 붙였다. 글과 사람이 서로 맞물리는 형태였다.
이와 나란히 움직인 것이 혁명전선이다. 여러 자료에서는 이를 통일혁명당 계열의 비공개 기관지로 설명한다. 1967년 무렵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고, 조직 내부에서만 돌았다는 진술이 반복된다. 청맥이 바깥으로 열린 통로였다면, 혁명전선은 안쪽에서만 돌던 통로였다.
1964년 3월15일 비공개 모임에 대한 기록도 전해진다.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등이 모였고, 조직을 어떻게 꾸릴지, 글은 어떤 방식으로 내보낼지를 논의했다는 내용이다. 훗날 정리된 자료를 통해 알려진 것이어서 세부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1964년 초부터 공개 활동과 별도의 준비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설명은 여러 문헌에서 반복된다.
청맥은 공식 유통, 혁명전선은 지하 유통
정리를 해보면 구도가 보인다. 청맥은 바깥으로 드러난 통로였다. 혁명전선은 안쪽에서만 움직였다. 청맥은 서점과 독자를 통해 퍼졌고, 혁명전선은 조직 내부에서만 전달됐다. 문제는 이 두 길을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맡았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힘을 발휘했다. 잡지를 통해 관심을 끌었고, 학사주점에서 서로 알게 됐다. 그 가운데 일부는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조직에도 관여하는 일이 늘어났다. 역할이 한쪽으로 나뉘지 않고 한 사람에게 겹쳤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을 앞둔 시기에도 이런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청맥에는 관련 글이 계속 실렸다. 바깥에서는 논쟁이 커졌고, 안에서는 별도의 조직 이야기가 이어졌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드러났다. 공개 활동은 기록이 남는다. 누가 글을 썼는지, 어디서 인쇄했는지, 자금이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쌓인다. 학사주점에서는 누가 드나들었는지, 누구와 가까운지가 드러난다. 비공개 조직은 인원이 적다 보니 같은 이름이 계속 반복된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연결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잡지와 주점으로 사람 모은 후 별도 조직 운영
김질락은 이 구조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는 청맥 운영을 맡았고, 통일혁명당 사건에서도 핵심 인물로 기소됐다. 김종태 역시 청맥과 학사주점을 바탕으로 조직을 만든 인물로 언급된다. 이문규와 신영복도 같은 맥락에서 함께 등장한다. 공개 활동과 비공개 조직을 나눠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안쪽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청맥은 넓은 독자를 상대로 여러 주제를 다뤘다. 반면 비공개 조직은 인원을 제한하고 기준을 두었다.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배제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공개 활동을 유지하려는 쪽과 더 깊은 조직을 강조하는 쪽이 충돌했다.
1967년 6월, 청맥은 문을 닫았다. 이듬해 통일혁명당 사건이 터지면서 관련 인물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잡지, 주점, 인맥이 함께 묶여 언급됐다. 따로 떨어져 보이던 것들이 한 덩어리로 설명됐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의 활동은 한 가지 방식으로 남는다. 바깥에서는 잡지와 공간으로 사람을 모으고, 안에서는 별도의 조직을 굴렸다. 두 길이 동시에 돌아갔다. 같은 인물이 그 사이를 오가면서 연결이 쌓였다. 그 결과, 공개 활동과 비공개 조직을 완전히 가르는 선은 점점 사라졌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