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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돼지농장에서 스마트팜까지… 이화영·리호남 연결고리 추적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20 14: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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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베이징·평양, 2007년 이해찬 방북, 2019년 스마트팜·방북비 ‘반복 등장’
  • 리정호 “리호남, 김정은에 직보”…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 “대체로 사실에 부합”

돼지농장 사업과 2019년 스마트팜 사업은 명분은 달랐지만, 협력사업과 별도 대가가 맞물린 구조가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6년 불법 대북송금의 핵심 인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북한 측 인사 리호남. 


이 둘을 두고 국회를 중심으로 설전이 이어졌다. 현직 국정원장까지 등장했지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이 법정 진술을 유지하면서 여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논란은 “리호남이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경기도 주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자 명단에 없었다”는 주장에 집중돼 있지만, 더 본질적인 쟁점은 따로 있다. 

 

2006~2007년 돼지농장 사업 국면과 2019년 스마트팜·방북비 국면을 나란히 놓고 보면, 리호남이라는 이름이 남북 공식선 바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리호남은 북한의 대남 접촉과 비공식 사업 라인에서 오래 거론돼 온 인물이다. 

 

조선노동당 39호실 출신 리정호와 한미일보가 접촉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공통으로 리호남을 비공식 접촉선의 핵심축으로 지목했다. 

 

리정호는 최근 인터뷰에서 리호남이 단순 실무선이 아니라 자금 전달과 대남 접촉, 보고 라인을 함께 쥔 인물이라는 취지로 주장했고,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도 대남관계와 여권 활용, 비공식 접촉선 운용 방식에 관한 설명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리호남 이름이 반복된 순간들                                  

• 2006년 10월 20일 안희정·이화영, 베이징에서 리호남 접촉.

• 2006년 12월 16일 이화영 평양 방문, 북측 접촉 창구로 리호남 거론.

• 2007년 3월 7일 이해찬 방북 때도 이화영의 북측 카운터파트로 리호남 지목.

• 2019년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방북비 300만 달러 대납 구조가 쟁점화.

• 2025년 6월 5일 대법원, 이화영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 공모 혐의 확정.

• 2026년 4월 국정원과 방용철 진술이 리호남의 필리핀 체류 여부를 두고 정면 충돌.


이 지점에서 최근 정치권이 앞세운 “리호남이 필리핀 공식 행사 명단에 없었다”는 주장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공식 명단은 어디까지나 공식 대표단을 보여주는 자료다. 검찰이 애초 공소사실 단계에서부터 리호남을 북한 국가보위성 소속 대남공작원으로 적시했다면, 그를 공식 행사 참석자와 같은 방식으로 포착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현장 부재까지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개된 보도와 공소사실, 관련 정황을 종합하면 이화영은 2006년 베이징 접촉과 평양 방문, 2007년 이해찬 전 국무총리 방북 국면에 이르기까지 리호남과 여러 차례 연결된 것으로 읽힌다. 

 

2006년 12월 평양 방문 때도 북측 접촉 창구는 리호남으로 알려졌고, 2007년 3월 이해찬 방북 때도 이화영의 북측 카운터파트가 리호남이었다는 정황이 이어진다. 

 

이 구조는 2006~2007년 돼지농장 사업과 2019년 스마트팜 사업을 겹쳐 놓아 보면 더 선명해진다. 

 

2006년에는 북측이 이해찬 방북 및 후속 고위급 접촉 국면에서 현금 50만 달러 또는 돼지농장 건설 같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쌍방울 사건에서는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와 방북비 300만 달러 대납 의혹이 공소사실의 중심축으로 등장했다. 

 

사업 이름은 달랐지만, 앞에서는 협력 사업이 보이고 뒤에서는 별도 비용과 비선 접촉이 따라붙는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명분은 달랐지만 북측이 협력사업과 별도의 대가를 연결하는 방식은 유사했다. 

 

2019년에도 송명철, 김성혜, 리종혁 등 조선아태위 공식라인과 함께, 검찰이 국가보위성 소속 대남공작원으로 적시한 리호남 비선이 병행 작동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2023년 이화영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의 당시 진술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이종석은 법정에서 대북 협력사업은 통일부 장관 승인 사항이며, 지자체가 민간기업의 대북사업에 개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현금 지원은 ‘범죄 행위’라고 못 박고,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추진 역시 남북관계 흐름상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비정상적인 시도’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종석의 증언은 “그런 일은 정상적인 제도 안에서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이 800만 달러 대북송금 공모를 최종 확정한 이상, 그 말은 이제 다른 의미를 띠게 됐다. 

 

정상 행정으로는 성립하기 어려운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그것은 제도 밖에서 추진된 비정상적이고 위법한 행위였다는 점을 오히려 역으로 비추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명단 한 장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2006년에도, 2019년에도 공식 협력사업 뒤편에서 리호남이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름을 지웠다고 구조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벌어진 두 사건의 닮은꼴 구조가 오히려 리호남을 둘러싼 비선 접촉의 성격을 더 짙게 보여주고 있다.

 

 

   리호남은 누구인가


유튜브 채널 ‘이연승의 스모킹건’에 출연한 리정호는 리호남을 북한 대남 공작의 핵심 연결선으로 묘사했다. 진행자는 리정호를 북한 39호실 출신으로 소개하며, 왜 대북 자금 전달이 리호남 같은 공작원 라인을 통해 이뤄졌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리정호에 따르면 리호남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남 공작에 관여한 인물로, 대외연락부 계열을 거쳐 통일전선부 계열에서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이다. 

 

그는 리호남에 대해 “보통 공작원은 아니”라며, 자금 수수와 접촉, 공작 활동 전반이 북한 최고지도부에 직접 보고될 수 있는 위치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통일전선부 부부장급 위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내놨다.

 

리정호는 특히 리호남이 단순한 연락책이 아니라, 돈과 보고가 최고권력으로 올라가는 통로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누가 리호남 라인을 통하느냐에 따라 방북 추진, 대남 사업, 협상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남한 인사들과의 접촉 경험, 대남 네트워크, IT 연계 역할까지 거론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터뷰에서 그려진 리호남의 모습은 단순한 공작원을 넘어 북한의 자금·공작·대남 사업을 잇는 실무 핵심축에 가깝다.

 

한미일보와 통화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도 리정호의 설명 가운데 대남관계, 비공식 접촉선 운용 방식에 관한 부분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구체적 직함과 개별 동선, 특정 시기의 역할은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그가 공식 대표단 명단에 포착되지 않더라도 비공식 접촉선과 자금 전달구조의 핵심축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을 리정호와 정보관계자 모두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6~2007년 돼지농장 프로젝트, 무엇이었나


2006년 북핵 국면으로 남북 공식 대화가 경색되자, 노무현 정부 주변에서는 비공식 접촉선을 통한 돌파 시도가 이어졌다. 당시 공개 보도에 따르면 안희정과 이화영은 2006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리호남을 만났고, 이 흐름은 같은 해 12월 이화영의 평양 방문과 2007년 3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방북으로 이어졌다.

 

이화영은 2006년 12월 16일 평양을 방문했고,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 명의로 북측 민화협과 돼지농장 추진 합의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측 접촉 창구로는 리호남이 거론됐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권오홍이다. 공개 보도상 권오홍은 코트라(KOTRA) 출신 대북 경제통으로 소개됐고, 안희정의 대북 접촉을 주선한 인물로 거론됐다. 그는 훗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2006년 12월 이화영과 함께 평양을 방문할 때 정부 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다만 이 공개 진술은 어디까지나 권오홍 본인의 무승인 방북에 관한 것이며, 이화영까지 곧바로 같은 법적 상태였다고 단정할 자료는 아니다.

 

북측이 접촉 국면에서 요구한 것은 단순한 정치 대화만이 아니었다. 당시 보도에는 현금 50만 달러 또는 돼지농장 건설 같은 조건이 거론됐고, 이후 ‘1만 두 규모 돼지농장’ 구상이 대안처럼 논의됐다는 대목도 나온다. 

 

결국 앞에서는 교류협력 사업이 보이고, 뒤에서는 별도 조건이 따라붙는 구조가 이때 이미 나타났다는 뜻이다.

 

이해찬의 2007년 3월 방북은 즉각적인 대형 합의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만나 경협 문제와 남북관계 현안을 논의한 정치적 접촉이었다. 동시에 후속 접촉과 사업 논의의 물꼬를 튼 계기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돼지농장 프로젝트는 단순한 축산 지원 사업이라기보다, 방북 성사와 후속 고위급 접촉의 조건이 뒤섞인 정치·대북 접촉 사업의 성격을 함께 띠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래서 2006~2007년 돼지농장 프로젝트는 2019년 스마트팜·방북비 공방과 자주 비교된다. 사업 이름은 달랐지만, 협력사업과 별도 대가, 공식선과 비선 접촉이 겹치는 구조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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