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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봉 칼럼] 글로벌 표준 등지는 고용부, ‘우물 안 기술사’ 키우겠다는 것인가?
  • 박정봉 교수
  • 등록 2026-05-06 22: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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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사 지격, 양적 완화 아닌 질적 강화 필요

 

기술사 자격은 단순한 연차 채우기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엔지니어의 '품격'과 '실력'의 보증수표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고용노동부의 경력 요건 완화안은 이러한 글로벌 표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행정이다. 한국과 선진국의 실태를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먼저, 한국의 기술사 응시 자격은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 실무 경력 중심의 상향식 자격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학력과 경력을 혼합하여 인정하고 있다. 

 

주요 응시 조건은 △기사 자격 취득 후 4년 △산업기사 5년 △기능사 7년의 실무 경력이 요구되고, 관련학과 4년제 대졸 후 6년, 3년제 전문대 7년, 2년제 전문대 8년의 경력을, 순수 실무 경력만으로는 해당 직무 분야에서 9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석·박사 학위자는 대학원 이수 기간을 경력으로 일부 인정(석사 최대 2년 등)하고 있다.

 

이번 노동고용부의 입법예고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 이후 상위 자격 조기 취득에 따른 생애 소득 증대 및 사회적 대우 개선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기술사 실무 경력 요건을 현행 대비 2~4년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저급한 변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입법예고안의 부당성은 차고 넘치지만, 기술사의 국제통용성 한 가지만 놓고만 봐도 다음과 같이 국제 기준에 미달될 뿐만 아니라 국제통용성에도 반하는 행정이다.

 

한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모두 Washington Accord(국제 협약) 가입국이다. 이들 선진 국가의 기술사(PE/CEng 등) 응시 자격 제도는 공학교육 인증(Accreditation)을 받은 자에게 단계별 시험을 치르게 하고, 나아가 도제방식 경력(Mentoring)을 보유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유독 한국만 공학교육 인증과 무관하게 기술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미국과 싱가포르(PE-Professional Engineer)는 기술사 응시 자격을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공학교육 인증(ABET) 학위를 취득해야 하고, 2단계는 FE 시험에 합격(Engineering in Training)해야 하며, 3단계는 FE 시험 합격 후 PE 감독하에 실무 경력을 4년 이상 쌓은 다음, 마지막 4단계에서 실무 경력 4년을 보유한 자에게 PE 시험(싱가포르 4단계는 Professional Interview)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며, 미국의 기술사 최종 합격자는 주 정부에 등록하여 면허를 발급받게 된다.

 

영국(CEng, Chartered Engineer)은 최소한 석사(MEng) 또는 학사(BEng) 수준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자로 추가 학습(Further Learning)을 통한 4~6년의 실무 경력을 보유해야 한다. 경력은 정해진 기간보다는 역량(Competence) 중심으로 심사하며, 심사는 서류 심사 및 면접(Professional Review Interview)시험을 치르는데, 심사 과정이 일반 필기시험 과정보다 더욱 까다롭다.

 

일본(기술사-Professional Engineer Japan)은 한국과 가장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학교육 인증(ABET) 이수자는 1차 시험을 면제하고, 1차 시험 합격 시 ‘기술사보’로 등록하여 경력을 쌓아야 한다. 기술사보 등록 후 ‘지도기술사’ 하에서 4년(또는 지도기술사 없이 7년)의 실무 경력을 쌓아야 2차 시험(필기 및 구술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자에게 기술사(PE) 자격증이 주어진다.

 

캐나다(P.Eng)도 워싱턴 어코드(Washington Accord) 가입국으로 필수 조건이 인증된 공학 학위 보유자이어야 한다. 캐나다는 기술사 배출 과정이 가장 엄격한 국가 중 하나로 4년의 경력과 윤리 시험을 치르는데, 검증된 실무 경력 후 인터뷰를 통해 자격을 부여한다.

 

한국과 선진 외국 간의 응시 자격 제도를 간략하게 비교·검토해 보면, 한국과 일본은 시험형 국가이다. 그러나 한국은 응시 자격 진입조건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개방적인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진입조건이 엄격하다. 또한 영국·호주·캐나다·싱가포르 등은 검증형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실무 경력 검증에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워싱톤 어코드(Washington Accord)를 발표할 만큼 공학인증제도를 철저히 이행하는 국가로 중간 정도의 시험 난이도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어코드에 의한 공학인증제도는 대학 공학교육의 품질을 보증하는 국제 표준이다. 우리나라도 워싱턴 어코드 정회원국으로서 공과대학 졸업생은 미국, 영국 등 회원국에서 정규 공과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아야 함에도 아직 공학인증제도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한 탓에 미국의 50개 주(州) 중 텍사스주에서만 인정받고 있을 뿐 나머지 49개 주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도 당초 한국의 기술사를 국제기술사로 인정했으나 공학인증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지금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공학인증제도는 PE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요건이며, 글로벌 표준으로 영국의 IPEC, 일본의 JABEE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워싱턴 어코드를 통해 학력의 상호 호환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공학인증 없이는 기술사 응시 불가” 수준으로 강력히 연계되어 있으나, 한국은 아직 학위 없이도 경력으로 기술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한국의 기술사가 해외(특히 미국, 싱가포르 등)에서 글로벌 통용성을 인정받아 활동하려면 ABEEK 인증 학위 제도를 전면 확대하여 선진국 대열에 동참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검증 과정이 완전치 못한 경력 기간을 2~4년씩 완화할 일이 아니라, 현존 경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오히려 검증 과정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선진국들과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고용노동부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예고한 것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 박정봉 교수

 

한국기술사회 이사, 호치민기술대학교 초빙교수,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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