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하는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란 농축우라늄 보관’ 발언은 미·이란 협상을 읽는 중요한 신호다.
겉으로는 러시아의 중재 의사 표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협상 테이블의 중심이 단순한 휴전에서 핵물질 처리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이란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다. 이란 입장에서 핵물질을 미국에 직접 넘기는 것은 사실상 굴복으로 비칠 수 있다.
반면 러시아 보관 방식은 다르다. 이란은 체면을 지킬 수 있고, 미국은 이란 영토 밖으로 핵물질을 빼내거나 통제 가능한 구조 안에 묶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보관 카드는 미·이란 양측 모두에게 정치적 퇴로가 될 수 있다.
알자지라는 10일 푸틴 대통령이 이란 농축우라늄 비축분의 이전과 보관을 러시아가 감독할 의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도 앞서 크렘린이 이란 농축우라늄을 러시아로 반출해 보관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한 바 있다고 전했다. 당시 크렘린은 러시아가 이란 농축우라늄을 자국 영토에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이 중요한 이유는 비축분 보관이 농축 동결 없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란이 이미 확보한 농축우라늄을 러시아에 맡기더라도, 이란이 다시 농축을 계속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협상의 실효성이 사라진다.
결국 비축분 처리 카드가 공개적으로 언급됐다는 것은 기존 핵물질의 반출·보관뿐 아니라 향후 일정 기간 농축 유예 또는 생산 동결 문제가 함께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목적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란의 즉각적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하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회복시키며, 전쟁 장기화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로이터는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1쪽짜리 양해각서(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에 접근하고 있으며,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대이란 제재 해제, 이란 핵 프로그램 제한 문제를 논의하는 구조가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역시 시간을 끌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사·경제적 부담은 커진다. 다만 이란은 핵물질을 미국에 직접 넘기거나 일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모양새는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러시아 보관 방식은 이란에는 체면을 보존하는 출구이고, 미국에는 핵물질 통제라는 실질적 성과를 제공하는 절충안이다.
최근 흐름은 MOU 타결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로이터는 이란 관영 IRNA를 인용해 이란이 미국의 전쟁 종료 제안에 대한 답변을 중재국인 파키스탄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 양측 소식통은 최근 평화 노력이 전쟁을 멈추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허용하는 임시 MOU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더 포괄적인 합의는 이후 이란 핵 프로그램 같은 난제를 다뤄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정치 일정도 변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 장기화 부담을 안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미·이란 간 교전이 휴전을 시험하는 가장 심각한 충돌이었다고 전하면서, 이 전쟁이 해외 전쟁 개입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정상외교를 앞둔 미국으로서는 이란 전쟁을 최소한 관리 가능한 상태로 묶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국면은 ‘최종 핵합의 임박’이라기보다 ‘초기 MOU 타결 가능성 상승’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은 핵물질 처리와 농축 유예의 틀을 원하고, 이란은 체면을 지킬 중재 구조를 원한다. 러시아는 그 사이에서 보관자이자 중재자로 들어올 수 있다. 세 축의 이해가 일시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과속 해석은 금물이다.
이란이 공식적으로 농축 동결에 합의했다거나, 농축우라늄 전량 반출을 수용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미국 제안에 대한 이란의 답변 전달, 임시 MOU 논의, 러시아 보관 카드의 재부상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점은 협상이 정체 상태가 아니라는 강한 정황이다.
결론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비축분 보관은 농축 동결 없이는 의미가 약하다.
따라서 러시아 보관 카드가 다시 공개됐다는 것은 미·이란 협상이 이미 핵물질의 위치, 생산 동결의 기간, 제재 완화의 순서, 호르무즈 해협 통항 회복이라는 구체적 교환 단계로 들어섰다는 뜻에 가깝다.
미·이란 간 합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전쟁을 멈추고 핵물질 처리와 후속 핵협상을 묶는 초기 MOU 타결 가능성은 높아졌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신호다.
푸틴의 ‘우라늄 보관’ 발언은 미·이란 핵협상이 안개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증거다. 안개는 아직 남아 있지만, 협상선은 분명 핵물질 처리와 농축 동결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