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홈페이지의 특별 해설 프로그램 안내 홍보물. 일러스트 상단에 ‘6·25전쟁’과 중국 공산당의 참전 미화 용어인 ‘항미원조’라는 문구가 한국·중국 어린이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함께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해당 게시물은 항의가 쇄도하자 9일 오전 삭제됐다.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6월의 녹음이 짙어질수록, 이 땅의 흙냄새는 무겁고 비릿해진다. 1950년 여름부터 3년간 한반도의 산하를 적셨던 그 거대한 피의 무게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낯선 이념 하나를 지켜내기 위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던 극동의 작은 나라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미군 3만6000여 명이 이 땅에서 숨을 거뒀고,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팔다리를 잃었다.
거룩한 피 흘림을 기억하는 성소 ‘전쟁기념관’
1000여 명의 영국군, 740여 명의 터키군, 310여 명의 캐나다군을 비롯해 16개국에서 달려온 전투 병력과 6개국의 의료지원단까지. 총 15만 명이 넘는 유엔군 전사상자와 14만 명에 달하는 국군 용사들이 처참하게 산화했다. 우리는 그들의 뼈와 살이 으깨어진 척박한 토대 위에서 기적처럼 번영의 탑을 쌓아 올렸다.
그 거룩한 피 흘림을 기억하고 위령하기 위해 세워진 국가의 성소(聖所)가 바로 전쟁기념관이다. 그런데 이 엄숙한 호국보훈의 달 한복판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참담하고 기괴한 기획이 튀어나왔다.
전쟁기념관이 6월 13일부터 25일까지 ‘6.25 전쟁의 또 다른 해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특화 해설을 진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 ‘또 다른 해석’의 실체는 경악스럽게도 중국 공산당의 시각인 ‘항미원조(抗美援朝·미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범 국가의 침략 논리를, 대한민국 안보의 상징인 전쟁기념관 한복판에서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얄팍한 껍데기를 씌워 관람객에게 유통하겠다는 것이다.
분노를 넘어 서늘한 슬픔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누군가는 짐짓 깨어있는 지식인 행세를 하며 내게 훈계를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강연 내용을 직접 들어보지도 않고 제목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닫힌 사고방식이 아니냐”고. “학문의 영역에서 다원적인 시각을 교차 검증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관용의 잣대를 들이밀 것이다.
참으로 한가하고도 역겨운 지적 허영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할 때나 허락되는 지적 사치다. 6·25는 김일성의 치밀한 기획과 스탈린의 승인, 그리고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빚어진 명백하고도 일방적인 불법 남침이었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는 건 누구의 시각?
중국이 개입한 이른바 ‘항미원조’는 통일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을 무참히 짓밟고, 북한 주민들을 70년째 굶주림의 지옥으로 몰아넣은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일 뿐이다.
독이 든 성배는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독배임을 안다. 살인마의 궤변은 법정의 피고인석에서나 건조하게 심문할 일이지, 희생자의 피가 마르지도 않은 추모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교양 있게 감상할 ‘관점’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두고 “나치의 시각이라는 또 다른 해석도 한 번 들어보자”며 마이크를 쥐여주는 미치광이는 없다.
명백한 침략 전쟁의 전범들이 내세운 정치 선동을, 수백만의 자국민과 우방국 청년들을 학살한 바로 그 흉기를 ‘또 다른 시각’이라며 국가의 성소에 들여놓는 순간, 호국 영령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능멸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들어보고 자시고 할 가치조차 없는 헌법적 테러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옛말이 있다. 타인의 목숨 건 은혜를 너무도 쉽게 배신하는 인간의 섬뜩한 배은망덕을 경계한 이 낡은 격언을, 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뼈저리게 되새긴다.
만약 그 은혜를 잊은 짐승이 하나의 거대한 국가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필시 지금의 대한민국일 것이다. 멸망의 벼랑 끝에서 피도 섞이지 않은 이방인 청년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구해줬건만, 정작 살아남은 이 나라는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자신들을 학살하려던 적국의 선전 구호를 ‘다양성’이라며 제단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은인을 능멸하고 살인자의 궤변에 마이크를 쥐여주는 이 끔찍한 자해극을 보며, 지하에 묻힌 3만6000명의 미군 전사자들과 유엔군 호국 영령들은 과연 이 배신자의 나라를 향해 무슨 말을 던지고 싶을까.
이념에 취해 국가의 영혼마저 중국 공산당의 발밑에 헌납해 버린 저 서늘한 위선. 머리 검은 짐승이 되어버린 국가의 비루한 민낯 앞에서, 6월의 짙은 녹음이 오늘따라 끔찍하도록 잔혹하게만 느껴진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