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4일~16일 전남도청을 비롯한 광주시내 일원에서 개최된 시국성토대회 ‘민주화 대성회’. [사진=5·18기념재단]
1980년 5월 광주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시민과 군인이 희생되었고 국가 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지 못했다.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것과 그 비극을 특정 정치 세력의 독점 자산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추모를 넘어 정치적 성역으로 만들다
광주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상징이라는 사실과, 광주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 역시 구별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 좌파는 오랫동안 이 둘을 의도적으로 섞어 왔다.
광주의 희생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광주를 정치적 성역으로 만들었고, 그 성역을 통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 자체를 봉쇄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광주를 이유로 특정 세력이 비판받지 않는 위치에 서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역사적 비극은 성찰의 출발점이어야지 면책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 세력은 광주를 자신들의 정치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광주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도덕적 인증서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광주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면 자동으로 정의로운 세력이 되었고, 광주 정신을 말하면 자신의 정치적 주장에 대한 검증이 생략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운동권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실패를 평가하는 문화가 사라졌다.
1948년 남로당의 실패, 1950년대 이후 혁명 노선의 붕괴, 통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각종 지하 혁명 조직의 실패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냉정한 반성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왜 국민이 혁명 노선을 지지하지 않았는지, 왜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했는지, 왜 북한 체제가 인권과 자유를 파괴하는 독재 체제로 변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부족했다. 대신 광주가 등장했다. 실패한 이념과 잘못된 전략에 대한 비판은 광주의 희생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역사적 비극이 정치적 방패막이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광주가 진보 좌파 내부의 자기 성찰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정치 세력이라면 자신들의 노선이 실패했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 좌파는 오랫동안 그런 과정을 거부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논리로 답하기보다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웠다. 자신들은 광주의 계승자이고 상대는 광주를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버리면 복잡한 논쟁은 필요 없어졌다.
경제 정책이 실패해도, 안보 정책이 실패해도, 북한에 대한 판단이 틀려도, 심지어 역사 인식에 오류가 있어도 광주라는 상징이 모든 문제를 덮어 주었다. 이러한 문화는 학문적 토론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신앙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판은 반동으로 규정되었고 질문은 금기로 취급되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세력이 정작 자신들에 대한 민주적 검증은 거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북한 독재 체제에는 왜 말 못하나
실제로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운동권 내부에서는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주체사상을 수용하는 흐름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선택을 국민 앞에 정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광주의 도덕성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광주의 희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까지 막아 주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광주 시민이 자유를 위해 희생되었다면 오히려 북한 독재 역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진보 좌파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서 일관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군사정권의 인권 침해에는 분노하면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는 침묵했고, 남한의 권위주의는 규탄하면서 북한의 세습 독재에는 관대했다. 이러한 이중 기준은 광주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광주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는 선택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광주 사건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그러나 역사적 기억은 누구의 독점물도 아니다. 특정 정치 세력이 광주의 유일한 상속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는 광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희생자를 기리는 일과 희생자를 이용하는 일은 다르다. 진실을 밝히는 일과 진실을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는 일도 다르다. 광주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광주를 이용한 도덕 독점을 비판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떤 세력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 광주 역시 역사 속에서 연구되고 검증되고 토론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이야말로 광주를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남기는 길이다.
그리고 종북 좌파 80년사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실패한 이념에 대한 성찰 대신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고, 논쟁 대신 성역을 만들고, 검증 대신 면책을 요구하는 정치 문화가 광주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