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주행 중인 우버 자율주행차(자료)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가중 처벌하는 일명 '민식이법'의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조정이 필요하다는 현직 판사의 제언이 나왔다.
장지웅 수원지법 안산지원 판사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교통범죄와 양형'을 주제로 열린 양형연구회 제16차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민식이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김민식(당시 7세)군이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 사고 시 최대 무기징역에 처한다.
세부 양형기준을 보면 어린이 교통사고 치상 범죄 감경구간 하한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300만원, 치사 범죄 양형기준 하한은 징역 1년 6개월로, 다른 범죄군(폭행치사·일반상해 하한 징역 2개월, 중상해 하한 징역 6개월)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정 판사는 "어린이 교통사고 범죄는 경미한 주의의무 위반까지 포함하는 순수한 과실범으로서 행위 불법이 미약한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형량 범위가 위험운전 치사상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정돼 경미한 과실도 과도하게 처벌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형량범위는 특히 하한이 다소 높게 설정돼 개별 사건의 책임 정도를 보다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형량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미 변호사(서울동부지법 국선전담변호사)도 토론자로 나서 "어린이 교통사고 범죄는 과실의 정도와 사고 경위가 매우 다양한 만큼 개별 사건의 책임 정도에 상응하는 형량이 선고될 수 있도록 현행 형량 범위의 적절성을 지속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판사는 음주측정거부 범죄의 형량 범위를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그는 "음주운전을 했으나 음주측정에 응한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고 음주측정까지 거부한 사람에 비해 더 무겁게 처벌받을 수 있어 형사사법상 형평성에 심히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승준 연세대 로스쿨 교수도 "음주측정거부는 단순한 행정상 의무 불이행이 아니라 중대한 사법방해범죄에 해당한다"며 "억지효과를 고려할 때 형량범위 상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원 양형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류부곤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교통범죄의 새로운 쟁점과 양형정책'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약물운전·고령자운전·자율주행 운전과 관련한 보다 정밀한 양형기준 필요성을 제언했다.
류 교수는 자율주행운전 사고와 관련해 "인공지능(AI)이 매개된 자율주행 환경에서는 운전자의 통제 가능성이 현저히 축소되거나 사실상 소멸된다"며 "운전자 중심 책임 귀속의 한계는 결국 자율주행 시스템을 설계·운영하는 제조사 등이 새로운 책임 주체로 부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 차량의 자율주행 단계에 따른 책임 비중을 차등화하는 등 "자율주행차 사고에 특화된 새로운 양형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0(비자동화)∼5(완전 자동화) 단계 중 4(고도 자동화·시스템이 주행의 모든 측면을 독립적으로 수행) 단계 이상은 제조사 등의 책임 비중을 절대적으로 둘 수 있다.
류 교수는 약물운전의 경우 단순히 '마약운전' 관점이 아닌 "일반 시민의 의료적 약물 사용을 전제로 한 새로운 좌표 위에서 재구성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고, 약물운전 단속 검출 약물의 96%가 의료용 마약류 및 비마약류 의약품이라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물의 종류(불법 마약, 의료용 처방약, 비마약류 의약품), 행위자의 인지 가능성(처방 시 운전금지 경고 고지 여부) 등 다층적 양형인자를 정밀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의 경우에는 대중교통 접근성과 생계형 운전 여부 등 사회구조적 조건을 양형인자로 명시하고, 조건부 면허제 등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토론자로 나선 소준섭 춘천지법 강릉지원 판사는 "(약물운전 법정형을 상향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일은 현재 약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양형 사례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며 약물운전에 관해 현 단계에서의 양형기준 마련은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