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협상 교착. 좌측 중국·우측 미국 사이 외줄타기하는 이재명 정권의 ‘도박과 줄타기’ 전략을 상징한 그래픽. 한미일보
한미 무역협상이 교착에 빠졌다. 표면적으로는 자동차 관세와 투자 조건을 둘러싼 이견이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계산이 얽혀 있다. 이재명 정권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국익을 걸고 시간을 벌며, 동시에 중국과의 외교 접점을 확대해 협상 공간을 넓히려 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전략적 버티기가 아니라 국익을 건 도박과 줄타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교착 국면을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한미일보가 4가지 관점에서 분석해봤다.
① 경제적 측면… 현금 출자 압박과 무제한 스와프 카드
일본은 이미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MOU에 서명하며 금융보증 중심의 구조를 수용했다. 그러나 한국은 같은 조건으로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이 꺼낸 무제한 스와프 요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해석된다. “우리는 일본 수준의 조건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대신 G7 국가들처럼 무제한 스와프를 요구한다”는 맞대응 논리다. 즉, 현금 출자 압박을 완화하고 협상 균형을 맞추려는 방어적 카드로 볼 수 있다.
다만 관건은, 이른바 ‘현금 출자 압박’이 양국 어느 쪽에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이 불리한 조건을 제시받았다는 해석은 일부 외신과 한국 언론 보도에서 제기됐지만, 미국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도 이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무제한 스와프 요구는 실제 현금 출자 압박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그런 인상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협상 명분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카드로 볼 여지가 크다.
② 정치적 측면… 연방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 벌기
무제한 스와프 요구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상징성이 크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불평등한 협정을 거부했다”는 메시지는 사법 리스크에 몰린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또한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협상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있다.
미국 내 법조계와 무역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IEEPA 발동이 연방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관세 부과는 헌법상 의회 권한임에도 대통령이 비상경제권을 남용했다는 점, 국가비상사태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최근 대법원이 강화한 ‘중대한 쟁점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조차 헌법주의 원칙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게 주류 평가다.
판결 시기는 이르면 올 연말, 늦어질 경우 내년 6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그때까지 시간을 벌며 “판결 이후의 유리한 국면”에 베팅하고 있는 셈이다.
③ 전략적 측면… ‘벼랑끝전술’인가, ‘도박’인가
한국 언론들은 이재명 정권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벼랑끝전술’을 쓰고 있다고 표현한다. 상대가 양보할 때까지 끝까지 버티는 방식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이와 다르다.
이번 한국 정부의 태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IEEPA 발동이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패소할 것이라는 외부 변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모양새이다. 트럼프가 이기면 한국은 관세 부담과 추가 압박을 떠안게 되고, 질 경우 일본보다 나은 조건을 확보하는 반전이 가능하다.
즉, 이번 선택은 전략적 버티기라기보다 연방대법원 판결에 올인한 도박에 가깝다.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무비용 승리”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결론은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분석한 추론일 뿐이란 점을 밝힌다.
④ 외교적 측면… APEC, 시진핑, 그리고 메시지 관리
한국은 10월 APEC 정상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거리를 두며 동시에 시진핑 주석의 참석을 유도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는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전적으로 협조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중국과 국제사회에 보낼 수 있는 외교적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조현 외교부 장관은 최근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을 논의했고,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 한중 FTA 2단계 협상, 서해 구조물 문제, 북한 비핵화 문제 등 한국 측 현안을 분명히 제기했다.
중국 측은 “무역보호주의 반대”와 “경제 세계화 유지”를 강조하며 한국의 균형 외교에 호응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는 한미 간 교착 국면 속에서 한국이 외교적 공간을 넓히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4가지 측면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트럼프가 연방대법원에서 이길 경우 한국은 치명적 관세 압박을 떠안게 되고, 질 경우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처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리기 때문에 이번 선택은 전략이 아니라 국익을 건 올인성 도박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동시에 한국은 조현 장관의 방중에서 보듯 중국과의 접점을 넓히며 APEC 무대를 활용해 시진핑 주석을 끌어들이려 한다.
결국 이재명 정권은 한미 협상에서는 도박, 한중 외교에서는 줄타기라는 이중 전략에 매달린 셈이다. 문제는 이 도박과 줄타기가 국익을 지켜내는 고도의 전략으로 남을지, 아니면 국가를 도박판에 올려놓은 무모한 선택으로 기록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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