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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난중일기] “나라 없는 서러움”… 미국·이란 전쟁에 뛰어든 쿠르드족
  • 방민호 교수
  • 등록 2026-03-08 13: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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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없이 살아온 3500만 쿠르드족의 슬픈 역사
  • 자국민 살해하는 독재국가 이란… 없어져야 마땅

쿠르드 자유당(PAK) 소속 이란 쿠르드족 전사들이 2월12일 이라크 아르빌 외곽 기지에서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이란에 선전포고한 지 하루 만에 이란 신정 지도자 하메네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도 미국은 숱하게 많은 포탄을 쏟아부어 단 며칠 사이에 이란의 방공망을 초토화시켰다. 이란은 미사일 대응은 물론 반격할 힘조차 잃어버렸다고 한다.

 

포화 속의 용병, 쿠르드족의 모험

 

이란은 큰 나라다. 한반도 크기의 7.5배나 되고 현재의 한국 면적만 따지만 무려 열여섯 배가 넘는다. 수도 테헤란은 그 큰 나라의 깊은 내륙에 위치해 있다. 

 

페르시아만까지 직선거리로 850~900km나 된다. 차로 12시간은 가야 한다. 산맥이 이어지는 고산지대를 끼고 있다고도 한다. 차로 한 시간 거리 내에 4000~5000m급 산들이 운집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지상군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여간한 결심 아니면 이 어마어마한 나라를 직접 공략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시 대통령 때 ‘이라크 자유 작전’으로 바그다드까지 함락시키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결국 탈레반에게 무기까지 넘겨주다시피 하고 철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미군이 직접 들어갔다는 뉴스 대신 쿠르드족 전사 수천 명이 이라크 지역에서 이란 지역으로 지상공격 작전을 개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은 이라크 지역으로 넘어와 있던 이란계 쿠르드 민병대 전사들이라고 한다. 이란 지역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킬 목적으로 이란 서부 쪽에서 쿠르드 민병대에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폭스뉴스 소식을 빌린 것인데, 이렇게 해서 필자의 눈과 귀에 다시 한번 ‘쿠르드족’의 존재가 인지됐다. 

 

쿠르드족은 미국의 이란 공격을 위한 ‘대리전’에서 ‘용병’으로 나서 이란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독립을 위한 모험을 감행하는 중이다. 

 

1991년 4월 걸프전 당시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북위 36도 선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라크의 쿠르드족 강경 진압에 대응했었다. 그 결과 이라크 쪽 쿠르드 자치 지역이 성립될 수 있었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은 끔찍한 것

 

쿠르드족은 한마디로 말해 나라 없는 민족이다. 그들은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 등에 분산, 거주하고 있지만 자기 나라가 없다. 

 

터키군의 침공을 피해 시리아 북부에서 도망쳐온 쿠르드족 주민들이 2019년 10월 이라크 북부 두호크의 브라다스르슈 난민촌에 도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체 인구는 약 3500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고 하니 결코 작은 크기라 할 수 없다. 서아시아에서는 아랍인·튀르키예인·페르시아인 다음으로 많고, 언어도 독자적인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나라가 없다. 

 

이라크 서북부 유전지대에는 쿠르드족 자치 국가가 있다고는 한다. 앞에서 말했듯 사담 후세인이 걸프전을 일으키고 또 이라크 전쟁으로 축출되던 시기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자기 나라는 없다. 

 

쿠르드족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은 나라 없는 서러움을 톡톡히 당하고 살아왔다. 세계 제1차대전 때에는 독립시켜 준다는 영국의 말을 믿고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지만 끝내 ‘배신’당했다. 

 

냉전체제의 1970년대에는 당시의 친미 이란과 친소 이라크 사이에서 이용당해야 했고, 이런 역사의 어떤 고비에서는 타민족을 학살하고 또 그들로부터 학살당하기도 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쿠르드족이라도 각각의 나라에 흩어져 있다 보니 동족 간에 서로 반목하고 투쟁하는 일까지 있어 오늘날까지 자기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나라 없는 서러움이란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다. 

 

작가 최인훈 선생의 문제작 ‘화두’(1994)를 읽을 때 체감적으로 다가온 대목이 하나 있다. 

 

1934년생 어린 최인훈이 국경도시 회령에서 해방을 맞이할 때 가장 먼저 바뀐 게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해방이 되자,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얻어맞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심지어 병원에서도 사람을 때렸다고 했다. 

 

문장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분명 그런 회상이 있었다. ‘화두’는 전체가 회상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뒷부분에 가서, 소비에트 연방 해체된 후 작가 조명희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로 가는 대목은 허구적인 요소가 있지만, 앞부분은 ‘사실 거의 그대로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밥이 있어, 밥 없이 굶어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사람이 단순한 경제적 동물이 아닌 다음에야 일제가 있어 쌀 생산량 늘고 학교들도 지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삶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첫째가 제 나라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시인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를, 좋았던 역사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도 얻어맞지 않으려면 제 나라가 있고, 제 나라 국민이어야 한다. 

 

‘국가’는 인간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제 다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그렇다면 이란은 ‘제국주의’라 할 미국에 의해 공격당하는 약소한 국가란 말인가? 

 

그 이란은 자신들이 영토로 삼은 쿠르드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시 페르시아 제국을 이어받은 제국주의적 강자가 아니던가? 

 

미 중앙정보국(CIA) 2002년 데이터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터키에 1800만 △이란에 800만 △이라크에 500만 △시리아에 200만 △기타 지역에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CIA]

아주 오래지도 않은 옛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야기다. 이란과 소련 사이에 아제르바이잔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이 일고, 이란이 유엔에 이 문제를 호소한다. 

 

강대국 소련이 약소한 자기들 영토를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은 사실은 누구의 것도 아닌,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것이어야 했다. 이란은 소련에 대해서는 약자였는지 몰라도 그 스스로 또한 강자로서 약자 위에 군림하는 ‘제국주의’였다. 

 

지금도 이란 북부 지역에는 아제리 사람들이 1500만~2000만 명이 살고 있어 나라를 이루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인구수보다도 많다. 

 

이들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쿠르드족보다 크지 않은 것은, 오랜 세월 병합되어 있다 보니 지배 엘리트에 진입한 이들이 많아졌고, 또 종교가 다르지 않은 것도 이유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란이 아제리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정당화될 수만은 없다. 

 

쿠르드 전사들이 이번에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 미국과 이란의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필자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2022년 히잡 시위의 도화선이 된, 희생된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는 지나 아미니(Jina Amini)라는 쿠르드 이름을 가진 쿠르드족 여성이었다. 

 

또한 2025년의 대규모 여성시위를 촉발한 살해사건의 피해자 엘라헤 호세인네자드(Elaheh Hosseinnejad)는 ‘여성·생명·자유(Women, Life, Freedom)’ 운동의 지지자였고, 동아제르바이잔계 여성이었다.

 

이란은 약자인 것만 아니다. 현재의 이란은 47년 잔혹한 신정 독재국가다. 2020년 미국 ‘선거 사기’를 다른 세력들과 함께 저지른 ‘범죄 국가’이자, 이슬람 정부가 자기 국민을 3만 명씩이나 살해하는 끔찍한 국가다. 

 

자국민을 그렇게 무참히 살해하는 정부는 무너져야 한다. 어떤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다. 지배당하며 학살당하는 민족은 해방되어야 한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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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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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3-08 18:23:32

    카레이스키를 생각나게 하는 슬픈 민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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