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군을 지휘하는 휴정’(1976, 박광진 作). 조선 중기의 고승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은 임진왜란일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5000명의 승군(의승군)을 모집하고 지휘하여 평양성 탈환 등 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한국 불교의 역사는 곧 나라를 지키는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사를 벗어 던지고 승군(僧軍)으로 일어났던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우리 민족의 DNA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400여 년 전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던 그 뜨거운 함성은 오늘날 현대적 의미의 결집으로 다시금 부활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의 부름 앞에 호국승군단(護國僧軍團)의 기틀을 닦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초대 단장의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본 칼럼을 통해 필자가 호국승군단을 창설하며 세웠던 원력과 호국 정신의 본질을 조명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종교적 서원이 국가 안보와 사회 통합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호국승군단의 탄생, 2017년, 구국의 원력이 결실을 맺다
필자는 단순히 산사에서의 수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불교가 국가의 위기 앞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왔습니다.
특히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사회적 분열이 심화되던 2017년, 흩어져 있던 불교계의 애국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평생을 국가 안보에 헌신해 온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전 대한민국성우회 회장)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박 전 총장과 함께 손을 맞잡고 창군 정신에 입각하여 호국승군단을 창단한 것은, 승가와 세속이 국가 안보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하나가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군의 정신적 지주였던 박 전 총장의 자문과 필자의 수행적 원력이 합쳐져 비로소 호국승군단은 그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력을 세웠습니다.
첫째, 정신적 무장입니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경도된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윤리 의식을 심어주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자 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것이 우리 승군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둘째, 사회적 갈등 치유입니다. 이념과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불교의 자비 정신과 화쟁(和諍)의 논리로 화합을 이끄는 중재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셋째, 실천적 호국입니다. 재난 구호, 안보 교육, 소외 계층 지원 등 실무적인 봉사를 통해 국가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조직을 지향합니다. 이는 과거의 승군이 무기를 들었던 것과 같은 현대적 의미의 방어입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화쟁’의 정신으로
초대 단장으로서 필자의 행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화쟁’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승단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동시에, 민·관·군과의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내어 호국승군단이 특정 종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닌, 전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국가적 자산이 되도록 정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 포교와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는 필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입니다. 필자는 최전방 부대부터 후방의 훈련소까지 장병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의 고뇌를 듣습니다.
젊은 장병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애국의 씨앗을 심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국가 안보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고귀한 투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강한 군대는 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무기를 든 자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멈추지 않는 원력과 시대적 소명
필자가 기초를 놓은 호국승군단은 이제 창설의 의지를 넘어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7년 창단 이후 걸어온 발자취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나, 필자가 뿌린 씨앗이 튼튼한 나무가 되어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국민에게 시원한 구국의 그늘을 제공할 수 있기를 매일같이 발원합니다.
필자의 신념은 명확합니다. “수행자는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이 있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란의 시기에 백성과 함께 울고 웃었던 선사들의 가르침처럼, 이러한 실천적 구도 행각이야말로 종교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필자와 호국승군단은 창단 정신을 잊지 않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동북아의 안보 위기 속에서 자비와 지혜의 등불을 더욱 밝힐 것입니다.
이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살아있는 법문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행자로서 피할 수 없는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