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한때 군사력의 상징은 더 빠른 전투기, 더 멀리 날아가는 미사일, 더 비싼 함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장에서는 비싼 플랫폼 몇 개를 오래 지키는 방식보다, 잃어도 감당 가능한 무인체계를 많이 투입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미 국방부가 리플리케이터(Replicator) 구상을 통해 여러 영역에 걸쳐 대량의 자율체계를 빠르게 전력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변화의 반영이다.
핵심은 ‘정확한 대량화’다. 무기를 많이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량을 빠르게 배치해 전장을 덮겠다는 뜻.
여기서 말하는 ‘숫자’는 단순히 드론을 많이 띄운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전장을 수많은 노드(node)로 잘게 나누는 데 있다. 노드는 네트워크를 이루는 개별 단위다.
무인기 한 대, 무인수상정 한 척, 수중 센서 하나가 모두 노드가 될 수 있다. 어떤 노드는 먼저 보고, 어떤 노드는 정보를 넘기고, 어떤 노드는 통신이 끊긴 구간을 이어 주며, 어떤 노드는 마지막 타격을 맡는다.
최근 분석들은 대량의 저가 무인체계가 직접 파괴력 못지않게 상대 방공망을 지치게 하고 값비싼 요격 자산을 소모시킨다고 본다. 숫자는 비용 압박이자 방어체계의 피로를 키우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전쟁이 바뀌지 않는다. 무인체계가 흩어져 따로 움직이면 그저 많은 표적에 불과하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란 각 무인체계를 하나의 분산된 감시망과 타격망으로 묶어 주는 구조를 뜻한다.
일부 노드가 파괴돼도 나머지가 임무를 이어 가는 분산형 구조가 미래 전장의 핵심이 된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가 교란 환경 통신(C2E) 프로그램을 통해 적응형 통신체계를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파 방해와 통신 교란 속에서도 여러 체계가 서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작동 원리를 떠받치는 첫 번째 기술은 저가 대량 생산 플랫폼이다.
무인 전장은 한 대의 완벽함보다 수량과 교체 가능성이 중요하다. 여기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 소모 가능한 자율체계다. 한 대를 잃더라도 전체 작전이 흔들리지 않도록,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대량 투입할 수 있는 자율 무인체계를 뜻한다.
앞으로 무인기의 가치는 ‘얼마나 비싼가’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만들 수 있는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기술은 센서 융합이다.
센서 융합이란 카메라, 적외선, 레이더, 전자신호, 음향센서처럼 서로 다른 감지 수단을 한데 묶어 표적을 더 정확하게 식별하는 기술이다. 많이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많이 본 것을 빠르게 구별하고 진짜 표적과 가짜 표적을 가려내야 한다. DARPA의 표적 인식 및 적응(TRACE) 프로그램도 이 지점을 겨냥한다. 교란된 환경에서도 저전력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표적을 인식하는 체계를 목표로 한다.
세 번째 기술은 복원력 있는 통신 구조를 말하는 메시 네트워크(mesh network)다.
메시 네트워크란 각 무인체계가 중앙 통신망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 중계기처럼 연결돼 우회 경로를 만들 수 있는 통신 구조다. 일부 연결이 끊겨도 전체 망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쟁터에서는 전파 방해와 위성 링크 차단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미래 무인 전장의 생존성은 플랫폼의 속도보다 연결의 회복력에 달려 있다.
네 번째 기술은 전지구위치정보시스템(GPS)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자율 항법이다.
자율 항법이란 외부 위치신호가 흔들리거나 끊겨도 스스로 위치를 추정하고 경로를 유지하는 능력을 뜻한다. 무인기는 GPS 없이도 비행해야 하고, 무인수상정은 위성신호가 약해져도 항로를 유지해야 하며, 무인잠수정은 애초에 GPS가 닿지 않는 환경에서 움직여야 한다.
다르파의 교란 환경 위치·시간·방향 정보(STOIC) 프로그램은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 미래 무인체계의 생존성은 많이 보는 능력만큼이나 길을 잃지 않는 능력에 달려 있다.
다섯 번째 기술은 협동 자율성이다.
협동 자율성이란 여러 대의 무인체계가 각자 역할을 나눠 하나의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 대가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여러 대가 역할을 나눠 하나의 전투체계처럼 움직일 수 있는가다. 어떤 드론은 정찰을 맡고, 다른 드론은 중계를 맡고, 또 다른 체계는 타격을 맡는 식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으면 인간은 모든 기체를 일일이 조종하기보다 임무의 우선순위와 승인에 집중하게 된다.
이 흐름은 실제 전장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이 이란 작전에서 세계 자율 정찰정(GARC)을 투입했다는 보도는 무인수상정이 더 이상 시험장이 아니라 실제 분쟁 수역에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GARC는 사람을 태우지 않고 감시·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무인 고속정 계열의 수상체계다.
최근에는 항재밍 능력과 항법 성능이 개선된 드론 운용도 거론된다. 항재밍은 적의 전파 방해를 견디는 능력이다. 이는 하늘에서는 항재밍과 자율 항법이, 바다에서는 장기 무인운항과 분산 감시가 동시에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무인기는 더 싸고 더 많이 생산되는 쪽으로, 무인수상정은 연안 감시와 정찰, 기만, 자폭형 공격 쪽으로, 무인잠수정은 은밀성과 장기 체류, 낮은 전력 소모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세 영역은 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일 가능성이 높다.
공중, 해상, 수중의 무인체계가 서로 정보를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면 전장의 개념 자체가 바뀐다.
결국 미래 무기의 본질은 더 강한 한 대가 아니다. 더 싼 노드 수백 개를 끊기지 않는 네트워크로 묶어, 일부가 사라져도 전체 임무를 지속하게 만드는 구조가 미래 전장의 표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무인 전장의 심장은 플랫폼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의 이름이 바로 숫자와 네트워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