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역대표부가 한국의 '망 사용료'를 문제 삼은 엑스 게시글 [미 무역대표부 엑스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내 네트워크 사용료, 이른바 망 사용료 문제를 거론하며 또다시 불만을 표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미국 측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트래픽 전송에 따른 사용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내놓으며 이 발언의 사실관계에도 이목이 쏠린다.
다만, 미국 행정부 주장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미국의 압박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미국 "한국만 망사용료" 재차 제기…디지털 통상 쟁점 재부상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현지시간 27일 엑스(X·옛 트위터)에 "세계 어떤 나라도 자국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인터넷 트래픽 전송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만 제외하고"라고 적었다.
이 글은 USTR이 미국 수출업자들이 직면한 '외국 무역장벽' 사례를 열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USTR은 "일부 국가가 미국산 수출을 막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여러 사례를 소개했는데 그중에서 한국 망 사용료 문제를 콕 집은 것이다.
사실 망 사용료 문제는 미국 측이 그동안 여러 차례 지목한 한국의 대표적 '디지털 규제 장벽' 가운데 하나다.
망 사용료는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 제공사업자(CP)가 통신망을 이용해 대규모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만큼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ISP)에 적정한 수준의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쟁점이다.
넷플릭스 로고 [넷플릭스 앱 캡처]
국내 통신업계는 2016년께부터 망 투자와 유지 비용을 외국 빅테크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영상 스트리밍과 모바일 콘텐츠 소비 급증으로 글로벌 대형 CP의 트래픽 비중도 그만큼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035720] 등 국내 기업은 트래픽 규모와 요율에 따라 망 이용 대가를 부담하지만, 일부 미국 빅테크 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대가를 내거나 사실상 부담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통신업계의 시각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2018년께부터 망 사용료 문제가 넷플릭스, 구글, 메타 등 미국 콘텐츠·플랫폼 기업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콘텐츠 제공 업계도 이용자가 통신사에 인터넷 요금을 내는 만큼 CP에 별도 비용을 물리는 것은 이중 과금이자 인터넷 개방성 훼손이라고 반박해왔다.
한국에서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소송, 트위치의 한국 사업 철수 논란 등을 계기로 망 이용료 문제가 국내외 통상 현안으로 부각됐다.
이처럼 국내 통신업계는 '공정한 비용 분담'을, 미국 정부와 글로벌 플랫폼 업계는 '차별적 규제와 무역장벽 우려'를 각각 내세우면서 양측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 "한국만 존재" 주장 논란…EU도 '공정기여' 논의 진행
USTR의 '한국만 제외하고'라는 표현을 두고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ICT 업계는 "한국에만 망 사용료가 있다는 미국 측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 빅테크들이 각국 상황에 맞게 망 이용 대가를 내는 경우가 있으며, 국내 사업자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요율을 적용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망 사용료나 이와 유사한 망 비용 분담 문제는 한국에서만 논의된 사안이 아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미 대형 플랫폼이 통신망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 기여' 논의가 진행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정부 내에서도 관련 법안 논의가 있었다.
다만 한국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건 발의됐고, 통신사와 글로벌 CP 간 실제 분쟁이 벌어지는 등 이 문제가 실질적 쟁점으로 부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구글 로고 [AP=연합뉴스]
실제 USTR은 지난달 31일 발간한 올해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도 한국의 망 사용료 문제를 서비스 분야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당시 "2021년 이후 국회에서 외국 콘텐츠 제공사업자가 한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에게 망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다수 법안이 발의됐다"고 적었다.
또 일부 한국 ISP가 콘텐츠 제공사업자이기도 한 만큼 미국 CP가 부담한 비용이 한국 경쟁사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할 때 일각에서는 USTR의 "한국만이 유일하다"는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한국이 가장 강하게 제도화하려는 사례"라는 취지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 정부 "국적 차별 없다"…미국의 디지털 압박 확대 우려
정부는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이 특정 국적 기업을 차별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USTR이 연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넘어 한국 사례를 주요 무역장벽 중 하나로 부각한 만큼 대미 통상 협상에서 디지털 분야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국내 디지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망 사용료와 플랫폼 규제, 국내 정밀지도 반출 문제는 모두 미국 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업계는 대형 글로벌 CP가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투자 비용 부담에는 소극적이라며 공정한 비용 분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빅테크 업계와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가 사실상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망 사용료 문제는 단순히 국내 통신사와 미국 플랫폼 간 비용 분담 문제를 넘어서는 분위기"라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고 장기간 평행선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