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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 이슈] ‘관세’보다 ‘길목’… 트럼프가 다시 짜는 해양패권 질서
  • 임명신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 등록 2026-04-28 14: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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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륙 간 해상 운송의 주요 동맥인 말라카 해협의 혼잡한 교통 상황. 국제 해상 무역량의 거의 4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이 해협은 길이가 약 800km이고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은 50km이다. [사진=worldoceanreview]

호르무즈해협에 미국이 이란 관련 선박 봉쇄를 선언한 지 2주를 넘겼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 우회 항로와 지브롤터 축의 전략성까지 부각돼 눈길을 끈다. 

 

동남아시아 말라카해협에선 미 군함 통과 사실이 20일 공식 확인됐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관통하는 말로 ‘길목’을 들어야 할 것 같다. ‘관세’보다 이 키워드가 그의 더 큰 그림임이 분명해졌다. 

 

앞서 미국과 인도네시아는 13일 국방장관 회담을 전후해 ‘중대 방위협력 파트너십’을 세웠다. 그 직후 인도네시아 영공 문제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것은 돌발 대응의 연쇄가 아니다. 미국이 해운·조선·항만·수로·군사접근권을 한 덩어리로 묶어 다시 쥐겠다는 신호, 대서양과 인도·태평양 주도권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호르무즈는 숨통, 말라카는 목젖

 

대항해시대 이후 500여 년 세계패권의 핵심은 바다길 통제력에 있었다. 그것의 주도권이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영국으로 넘어갔다. 19세기 ‘팍스 브리태니카’ 아래 영국의 해상 지배가 곧 무역 및 국제질서의 기준이 됐다. ‘해양패권=세계패권’ 공식도 이 시기에 굳어진다.

 

20세기 중반 이후 그 자리를 넘겨받은 게 미국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본의 아니게 엮인 것에 가깝다. 유럽대륙의 온갖 우여곡절에 휘말리지 않으려던 ‘고립주의’도 무색하게, 미국은 1차 2차 대전의 사실상 종결자가 되면서 패권국이 되고 말았다. 

 

전후 세계무역과 에너지 수송, 동맹체제, 달러 질서, 컨테이너 물류의 바탕엔 공해를 열어 두는 미국의 압도적 해군력이 깔려 있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과 제조·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지난 수십 년간 누려 온 안정적 바닷길, 그 덕분에 가능했던 일상의 풍요는 미 해양패권이 떠받친 질서 없이 상상하기 힘들다. 주요 해로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그 질서의 존재를 뒤늦게 체감하곤 했다. 

 

호르무즈 외 또 하나의 초크포인트가 말라카해협이다. 세계 해상무역의 약 22%, 해상 원유의 29%가 오간다. 로이터에 따르면 작년 말라카해협 통항 선박이 10만2500척을 넘었다. 특히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 중 약 75%가 말라카를 지난다. 

 

호르무즈해협이 중동의 숨통이라면, 말라카는 중국 산업의 목젖이다. 미국이 호르무즈 역봉쇄에 이어, 인도네시아와의 협력 확대와 미 군함 통과를 통해 말라카해협에서의 존재감도 가시화시켰다.

 

북극과 그린란드, 다음 시대의 입구

 

트럼프는 작년 4월9일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금년 2월 공개된 ‘미국해양행동계획’엔 아예 ‘북극 수로 안보전략’을 따로 넣었다. 여기엔 해빙으로 인한 북극의 무역로·자원·군사접근권 경쟁 전략 거점화가 적시돼 있다. 북극권 항행의 자유 보장을 정책 과제로 박아 넣은 것이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주목 이유도 여기서 풀린다. 이는 영토 확장 취미가 아니라 북대서양 입구, 조기경보, 핵심광물, 북극 항로를 한꺼번에 붙잡겠다는 계산이다. 이 틀에서 보면, 트럼프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납득이 간다. 

 

서방의 여느 지도자들과 달리, 트럼프는 푸틴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영구히 중국 품에 갇히는 구도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푸틴에 대해 ‘실망’을 표출하면서도 ‘끝난 게 아니다’라며 여지를 남기는 등, 압박과 대화를 함께 구사해 왔다.

 

지브롤터와 모로코까지…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을 한 손에

 

시야를 서쪽으로 넓히면 지브롤터해협이 같은 그림 안에 들어온다. 최근 중동 사태로 수에즈·홍해·호르무즈가 흔들리면서, 모로코의 탕헤르 메드항이 우회 항로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지브롤터해협에 자리한 아프리카 최대 컨테이너 항만이다.

 

수에즈운하루트 최남단이 말라카해협이다. [사진=worldoceanreview]

트럼프가 작년 모로코의 서(西)사하라 주권 주장을 재확인한 것은, 미국이 지브롤터 남안의 친미 거

점을 중시하는 흐름과 나란히 놓고 읽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 판단이 왜 중요한지, 이번 호르무즈 사태 때 드러났다. 

 

미국의 대이란 추가 공격 시, 지브롤터해협 북안의 스페인 사회당 정부가 자국 기지와 영공 사용을 불허하자, 미 국방부 내부적으로 스페인 제재 방안까지 검토됐다는 소식이다. 바다 관문을 관리할 ‘우군’ 판단 기준이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새 질서는 ‘힘에 의한 규범 집행’으로 요약된다. 호르무즈·말라카·지브롤터·그린란드를 연결시켜 조감하면 트럼프 미국의 구상이 선명해진다. 중국엔 에너지·물류·광물 의존의 급소를 들이대고, 유럽엔 미국 안보우산의 대가가 무엇인지 상기시키며, 다가오는 북극권 시대를 맞아 북쪽 관문까지 먼저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세계질서 재편은 가치외교의 미사여구보다 훨씬 원초적, 실질적이다. 배가 어디로 지나고, 누가 그 길을 열고 닫을 수 있나. 그 질문이 패권 구조 재구성을 관통한다. 이 흐름에 올라탈 것인지, 어깃장 놓다가 침몰할 것인지는 각국의 선택이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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