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항소심 선고공판. MBN화면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 항소심 판결은 한 사건의 유무죄 문제를 넘어 국가기관 공보의 경계라는 더 큰 질문을 남겼다.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인 형사1부(부장 윤성식)는 지난 29일 윤 전 대통령의 외신 대상 프레스 가이던스(PG·언론 대응 지침) 작성·전파 지시와 관련해 1심 무죄 판단을 뒤집고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쟁점은 단순히 허위 공보였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무원이 보도자료 작성·배포 과정에서 객관적 사정과 달리 긍정적 측면만 부각하거나, 불확실한 점이 있는데도 과장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허위 사실 공표는 당연히 검증 대상이다. 그러나 정책이나 조치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공보까지 직권남용 판단 요소가 된다면 파장은 전혀 달라진다.
정부 보도자료는 중립적 백서가 아니다. 정책의 취지와 기대 효과, 제도 개선 방향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공적 홍보물이다. 따라서 ‘긍정적 측면만 부각했다’는 기준이 죄의 문턱으로 올라선다면, 그 기준은 윤 전 대통령 사건에만 머물 수 없다.
공보의 형사책임화, 기준은 모두에게 같아야 한다
유정화 변호사는 이 대목을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항소심이 1심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허위공보 관련 부분까지 유죄로 인정했다며, 이는 국가의 의사표현 영역까지 형사처벌로 확장하는 것이자 대법원의 직권남용 법리를 과도하게 넓힌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이 검증 리포트가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 공보, 정부부처 보도자료, 국가데이터처 통계 공표자료, 선관위 해명자료는 모두 국가기관의 의사표현이다.
허위 사실과 선택적 강조를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가는 윤 전 대통령 사건을 넘어 향후 모든 공공기관 공보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검증대에 오를 수 있는 대상은 현 정부 대통령실의 대미 관세협상 공보다.
정부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협상을 외교 성과로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측 발표, 외신 원문, 국회 질의자료, 행정 기록 부재 문제를 종합하면 정부 설명과 실제 협상 구조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있었다.
한미일보는 앞서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이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고 홍보했지만, 외교부와 기재부 합동 보고서에는 ‘양국 간 입장 차이 지속’이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대통령실 브리핑 아카이브에서 ‘관세’, ‘3500억불’, ‘MOU’, ‘보증’, ‘대출’ 등 핵심 키워드가 포함된 문서를 찾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타결’이라 했지만 문서가 없었고, ‘성과’라 했지만 조건과 부담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으며, ‘현금 요구’라 했지만 원문 표현과 해석 차이가 컸다면 이는 검증 대상이다.
허위 공보와 긍정적 측면만 부각한 공보를 문제 삼겠다면, 대통령실 대미협상 브리핑도 같은 잣대 위에 서야 한다.
숫자와 선거관리 공보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의 국민행복지수·삶의 만족도 공보도 같은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미일보는 지난 4월 1일 “[단독] 국가데이터처 ‘삶의 만족도 80.8%’ 통계 마사지 의혹” 보도를 통해 같은 원자료가 한때 6.4점이라는 점수형 지표로 제시됐다가 이후 6점 이상 응답자를 묶은 80.8%라는 비율형 지표로 제시된 문제를 지적했다.
이 사안은 단순한 허위 통계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자르고, 어떤 제목과 수치로 국민에게 제시했느냐의 문제다.
평균 6.4점이라는 지표와 80.8%라는 비율은 같은 자료에서 나왔더라도 국민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항소심 법리가 과장·단정적 표현과 긍정적 측면 부각을 문제 삼는다면, 통계 공보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 공보도 마찬가지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 지위는 특권이 아니라 더 높은 설명 책임의 근거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1일 ‘허위 거소투표 신고·투표목적 위장전입 집중 예방·단속’ 보도자료를 내고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특별 예방·단속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단속 의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선관위가 단속 의지만큼 취약 유권자의 투표권 보장 실태를 설명하고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한미일보는 지난 22일 “[탐사] 취약 유권자 200만 시대… 선관위, 통계도 없다” 보도를 통해 치매 환자 약 124만 명, 중증정신질환 수진자 약 68만 명 등 단순 합산 192만여 명에 이르는 취약 유권자 규모를 제시하며 직접투표·거소투표 경로 통계 부재 문제를 제기했다.
선관위가 허위 거소투표 단속 의지와 제도 관리 능력은 강조하면서도 취약 유권자의 투표권 보장 실태와 검증 가능한 통계를 제시하지 못했다면, 이 역시 같은 기준에서 검증 대상이 된다.
사전투표 관리관 인쇄날인 해명, 투표함 CCTV·봉인지·참관 제도 홍보, 부정선거 의혹 반박 자료도 마찬가지다.
근거자료 공개 거부도 검증 대상이다
공보의 문제는 보도자료 문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공기관이 보도자료를 통해 특정한 사실관계와 정책 효과를 설명했다면, 그 설명의 근거가 된 자료도 검증 가능해야 한다.
보도자료는 공개하면서 정작 근거자료 공개를 거부한다면 국민은 발표 내용이 사실인지, 선택적 강조인지, 불리한 사실을 누락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박주현 변호사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청구 거부와 관련해 “국민에게 특정한 결론을 알리고 그 결론을 믿으라고 요구했다면, 그 결론에 이른 자료와 판단 근거도 공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설명해야 한다” 면서 “(내란재판부의 이번 판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개인정보를 제외한 부분에서 공개를 거부한다면 내란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면 직권남용을 따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자료의 근거자료 공개 거부 역시 공보 검증의 연장선에 있으며, 필요한 경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다.
허위공보는 당연히 검증돼야 한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만 부각한 공보’까지 죄의 문턱으로 끌어올린다면, 그 문턱 앞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만 서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 대통령실의 대미협상 브리핑, 국가데이터처의 국민행복지수 공보, 선관위 보도자료도 모두 같은 검증대 위에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판결은 법리가 아니라 특정 피고인을 향한 일회성 잣대가 된다.
반대로 이를 일반 법리로 삼겠다면 앞으로 수많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보도자료, 그리고 그 근거자료 공개 거부를 둘러싼 소송과 고발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위법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허위 사실 공표와 정책적 입장 설명의 경계는 어디인가.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공무원에게 어디까지 독자적 사실 판단과 수정 의무가 있는가.
정부 보도자료가 정책의 장점을 강조하는 것과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국가 협상을 설명하는 기관일수록, 국가 통계를 제시하는 기관일수록,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수록 홍보가 아니라 검증이 가능한 사실로 말해야 한다.
판결도 마찬가지다. 판결은 권위가 아니라 설명으로 정당화된다. 내란전담재판부라는 이름이 무거울수록, 법원은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 사법부는 형법의 적용에 있어 매우 좁은 범위와 엄격한 조건을 동반해왔다. 하지만 내란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그동안 행정의 재량행위로 분류됐던 지점을 형법의 영역으로 끌어 온 것이어서, 많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위법의 기준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대통령실의 대미 관세협상 공보를 먼저 검증한다. 핵심 질문은 “대통령실은 협상의 성과만 강조하면서 조건과 부담, 문서 부재와 해석 차이를 충분히 설명했는가”다.
이후 국가데이터처의 국민행복지수 공보와 선관위의 허위 거소투표·위장전입 단속 보도자료를 차례로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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