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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희토류보다 중한 건 무역질서
  • 김영 기자
  • 등록 2026-05-03 16: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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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은 낡은 공식
  • 경제와 안보는 더 이상 ‘따로국밥’ 아니다
  • 희토류는 대체 가능하지만 질서는 대체 불가능

 

한국 외교의 오래된 공식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었다. 북한의 군사 위협은 한미동맹으로 막고, 성장과 수출은 중국 시장을 통해 확장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공식은 한동안 현실적이었다. 미국은 안보 우산이었고, 중국은 성장의 통로였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균형이라는 이름의 전략적 유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 공식은 끝났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오늘의 안보는 군사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희토류, 에너지, 금융제재, 데이터, 항만, 통신망이 모두 안보의 일부가 됐다. 

 

경제도 더 이상 단순한 수출입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기술 표준을 따를 것인가, 어느 결제망 안에서 움직일 것인가, 어느 공급망에 들어갈 것인가가 곧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됐다.

 

중국은 분명 한국 경제를 흔들 수 있다. 거대한 시장이고, 핵심광물과 중간재 공급망의 중심축이다. 특히 희토류는 중국의 전략적 지렛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기준 중국이 자석용 희토류 채굴의 60%, 정제 생산의 91%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025년 10월 희토류와 관련 제품·장비·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추가로 강화했고, 외국 기업의 일부 재수출까지 중국 허가 대상으로 묶는 방식으로 통제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된다. 

 

희토류는 어렵지만 공급망의 문제다. 공급망은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변화할 수 있다. 호주, 캐나다, 미국, 동남아, 아프리카, 재활용 기술, 국가 비축, 대체 소재 개발이라는 우회로가 있다. 

 

완전한 독립은 쉽지 않지만, 위험을 나눌 수는 있다. IEA도 희토류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해 다변화, 비상 대비, 정책·금융 지원,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문제는 질서다. 

 

질서는 광산처럼 새로 파낼 수 없고, 공장처럼 이전할 수 없으며, 계약처럼 갈아탈 수 없다. 달러 결제망, 금융제재 체계,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 통제, AI 반도체 규칙, 군사동맹 네트워크, 해상교통로의 안전보장, 국제기구 운영 방식은 단기간에 대체할 수 있는 공급망이 아니다.

 

중국은 자원과 시장으로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규칙으로 묶을 수 있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미국 달러는 전 세계 외환거래의 89%에 달하는 압도적 중심 통화였다. 달러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운영 체계다. 미국 질서 밖으로 밀려난다는 것은 특정 시장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거래의 문법 자체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기술의 수출통제를 지속적으로 운용해 왔다. 2026년 1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으로 수출되는 일부 반도체 품목의 허가 심사 정책을 조정하면서도, 중국 구매자의 수출통제 준수 절차와 제3자 성능·보안 검증 등을 요구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미국이 단순히 물건을 팔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라, 첨단산업의 병목과 검증 규칙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문장은 마치 한국이 두 세계 사이에서 원하는 것만 골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들리게 만든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은 안보를 경제 안으로 끌어들였고, 중국은 경제를 안보의 무기로 만들었다. 안보와 경제는 두 개의 방이 아니라 하나의 전장으로 합쳐졌다.

 

한국이 중국과 거래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을 버릴 수 없고, 중국과의 교역을 감정적으로 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중국을 단순한 시장으로만 보는 순간 전략은 무너진다. 중국은 시장이면서 동시에 리스크다. 

 

거래는 하되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출은 유지하되 핵심 소재와 중간재는 분산해야 한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관리 대상이지, 생존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미국과의 관계도 낡은 방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은 더 이상 군사동맹의 상대만이 아니다. 미국은 기술 표준, 금융망, 수출통제, 공급망 재편, 에너지 질서를 함께 움직이는 국가다.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을 넘어 산업동맹, 기술동맹, 금융질서 동맹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질서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비용을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미 투자, 생산기지 이전, 기술통제 협력, 공급망 재편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그 비용은 질서 밖으로 밀려나는 비용과 비교해야 한다.

 

한국 외교가 다시 세워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중국은 대체할 수 없는 시장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시장이다. 희토류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다변화해야 할 공급망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 질서는 다르다. 지금 세계에는 달러 질서, 첨단기술 표준, 군사동맹망, 금융제재 체계를 동시에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질서가 없다.

 

한국이 봐야 할 것은 중국의 희토류만이 아니다. 미국의 질서다. 

 

희토류 부족은 비축과 우회 공급망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질서에서 밀려나면 국가 경제가 서 있을 땅 자체가 흔들린다. 중국은 한국 경제를 흔들 수 있지만, 미국 질서 밖에서 한국 경제는 작동하기 어렵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낡은 공식이 끝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자원과 시장을 쥐었지만, 미국은 질서를 쥐었다. 희토류는 대체할 수 있지만, 질서는 대체할 수 없다. 

 

한국의 선택은 어느 나라를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질서 안에서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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