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의 조계사. Ⓒ한미일보
천지는 고요하나 만물은 생동하는 이 계절, 사바세계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다시 켜진다. 불기 2570년(202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2600여 년 전 카필라 성에서 울려 퍼진 한 아기 부처의 외침은 생명 존엄의 선언이었으나, 지금 이 땅은 증오와 갈등, 그리고 지도층의 부도덕으로 인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호국종의 소임을 맡은 이로서, 작금의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준엄한 질타와 함께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전하고자 한다.
좌우의 이념 대립, 연기(緣起)를 망각한 공멸의 길
작금의 대한민국은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해 한 몸이어야 할 국론이 갈가리 찢겨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법(緣起法)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상호 의존의 진리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독선과 오만만이 가득하다.
네가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의 지혜를 망각한 채,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증오의 칼날은 결국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독화살이 될 뿐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갚을 수 없고 오직 사랑과 용서로만 사라진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념의 허울 뒤에 숨은 권력욕을 버리고, 민족의 안위와 평화를 먼저 생각하는 호국(護國)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도층의 부도덕, 만연한 범죄 혐의가 나라를 어지럽히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지도층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대통령부터 고위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법의 심판대 위에 서 있고, 범죄 혐의가 일상이 된 작금의 사태는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불신을 안겨주고 있다. 지도자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가 될 때, 그 나라는 무명(無明)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은 탐진치(貪瞋痴) 삼독을 경계하셨다. 권력을 쥐고 법망을 피하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정의와 도덕을 논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지도자들은 스스로가 밝은 등불이 되어 백성의 길을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어둠을 가중시키는 근원이 되고 있다. 지도층은 국민 앞에 참회하고, 자신들의 허물을 직시하는 정직한 정진(精進)의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국민이 스스로 등불이 되어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며 남기신 ‘자등명 법등명’은 주체적인 삶에 대한 독려이자, 불의에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길을 가라는 유훈이다.
지도층이 부패하고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우리 국민은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정법(正법)을 의지해야 한다. 위정자들의 감언이설과 이념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내 마음속의 불성을 믿으며 꿋꿋이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은 단순히 과거 성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다. 거짓과 탐욕이 지배하는 이 땅에 자비의 온기를 불어넣겠다고 다짐하는 결단의 날이어야 한다. 우리가 켜는 연등 하나는 작지만, 그 빛들이 모여 지도층의 부정을 비추고 이념의 벽을 허무는 거대한 지혜의 불꽃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호국불교의 원력으로 대화합의 연화장을 열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만인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을 기점으로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서로를 부처로 대하는 대화합의 장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분연히 일어났던 선사들의 호국 정신을 본받아, 우리 모두가 사바세계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각자의 처소에서 자비를 실천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정진의 발걸음이 모일 때, 이 땅은 비로소 향기로운 연화장 세계로 거듭날 것이다.
부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함성 속에,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을 품으려는 자비로운 손길 속에 부처님은 이미 와 계신다.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대한민국의 국운이 융성하고 온 국민의 가슴에 평화의 등불이 켜지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